관악산.삼성산 11국기봉 종주
메르스 여파로 몇 주째 버스를 이용한 지방산행 대신 근교산의 언저리만 도는 느슨한 산행의 연속
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치 고된 노동을 투입하지 않고도 실마리가 술술 잘 풀려 완성된 글이 호평을
받을 수 없듯이 왠지 산행을 하고도 몸의 여러 구석들이 찝찝하고 개운찮은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내 몸에 피로를 주는 운동이 절대 필요했다. 해서, 오늘은 큰 맘 먹고 큰 산꾼들이 큰 산
행을 하는데 동참하기로 했다. 이른바 관악산. 삼성산 11 국기봉 종주였다. 사실 나는 관악산의 여
기저기에 국기봉이 제법 있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그 숫자가 무려 11개나 될줄은 정말 몰랐었다.
암튼 오늘 산행은 국기봉 종주라는 호기심도 발동했지만 테마산행의 성격도 있고 해서 결코 후회없
는 산행이 되리라 확신했다. 문제는 내 몸이 무더운 삼복 더위를 뚫고 장시간 동안의 산행에 얼마만
큼이나 버텨줄 수 있을까였다.
결과부터 말하면 대성공이었다. 체력적으로 겁도 먹었고 이곳저곳 암릉을 오르내려야 하는 산행이
라서 위험요소도 많았지만 피로가 쌓이고 위험도가 높을수록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덕에 무
사히 종주할 수 있었다.
누구나 어릴 적 경험이 있겠지만 거울을 이용하여 태양광선을 받아 그늘진 곳을 향해 비추이면 빛
을 받은 그 지점은 유난히 환하고 밝아진다. 태양열이 분산되지 않고 바로 한 지점에 모이기 때문
이다. 우리의 정신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집중력을 잃지 않으면 일의 성과는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산행도 그랬다. 오늘 산행은 흡사 오래 고민하던 복잡한 문제의 해답을 의외로 간단하게 발견
해버린 그런 기분, 그래서 내 존재의 심연에서 피로로 얼룩진 즐거움이 샘 솟았는지 모른다.
산행 일시 : 2015. 7. 4(토)
산행 코스 : 관악.삼성산 11국기봉(1~11 도면 표기 순)
산행 시간 : 약 10시간 20분(중식.휴식시간 포함)
오늘 걷게 되는 관악산의 개념도이다.▼
11개의 국기봉을 오르는 순서대로 펼쳐놓은 도면이다. 그 길이가 자그마치 22km이다.▼
이른 아침 7시 사당역 4번 출구 직행버스 정류장 근처에 모였다.▼
관음사로 향하는 다리입구에서 종주의 성공을 다지며 기념촬영을 하였다.▼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첫 기착지인 관음사 국기봉에 이르렀다.▼
관음사 뒷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서울시내의 모습이다.▼
앞으로 올라야 할 긴 능선의 모습이다. 멀리 연주대가 가시권에 들어온다.▼
두번째 국기봉인 선유천 국기봉에 이르렀다. 잡티 하나 없는 푸른 하늘 덕에
가시거리가 무척 길어서 좋다.▼
선유천 국기봉에서 제3국기봉인 자운암 국기봉까지는 무척 길고도 어려운 코스이다.
일단은 연주대까지 가고 봐야 한다. 사진은 관악문이다.▼
연주대를 향하여 오르는 암벽코스이다. 사진으로 봐도 아슬아슬하다.▼
드디어 해발 629m인 관악산 정상에 이르렀다.▼
연주대에서 곧바로 우편 서울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험한 능선을 따라 20 여분 내려가면
자운암 국기봉이 나타난다. 제3국기봉이다.▼
자운암 국기봉에서 30 여분을 올라 다시 연주대로 올라야 한다. 아마 이 코스를 왕복하다 보면
이미 몸은 천근만근 돼버린다.▼
자운봉 주변의 멋진 비경이다.▼
자운봉에서 다시 연주대로, 연주대에서 깔딱고개에 오른 후 학바위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제4국기봉인 학바위 국기봉에 이른다. 물론 이곳에서 다시 깔딱고개로 되돌아가야 한다.▼
깔딱고개 정상에서 마당바위, 왕관바위 등을 지나면서 40 여분쯤 걸으면 팔봉 국기봉에 이른다.
이때 쯤의 몸 상태는 피로가 극해 달할 즈음이다. 하지만 벌써 다섯번째 국기봉에 이르렀다는
성취감에 무더위와의 모진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었다.▼
여섯번째 국기봉인 육봉국기봉이다. 육봉 정상에 이르렀을 때 무더위는 극에 달하는 듯싶었다.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지열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으며 온 몸은 땀으로 얼룩져 새우젖 냄새같은
악취가 진동하는 듯했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나도 이렇게 싫은데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 냄새를 맡는다면 얼마나
불쾌해 할까?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육봉에서 다시 불성사 방향으로 내려왔다. 이것으로 관악산의 6개 국기봉은 답사를 끝냈으며
앞으로는 5개의 삼성산 국기봉을 답사하는 일만 남았다.▼
아침에 집에서 1리터의 물과 또 다른 물인 1.2리터의 물을 어깨가 휘어지도록 짊어 메고
나섰지만 지금까지 산행을 하는 동안에 이미 그 많은 물들이 동이 나고 말았다. 다행스레
이곳 불성사에는 오랜 가뭄에도 샘물이 마르지 않고 솟아나고 있어 생명수 같은 물을 충
분히 보충할 수 있었다.▼
관악산에서 내려 와 다시 삼성산 정상에 올랐다. 이미 육신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지만
정신까지 지치고 흩어져선 안될 것 같았다. 사진은 7번째 국기봉인 삼성산 정상이다.▼
바로 앞에서 본 삼성산 정상은 해발 477미터, 이곳은 해발 481미터, 분명 이곳이 삼성산의
최고봉인 정상이 분명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앞서 있는 곳을 삼성산 정상으로 생각하
고 있었다.
바로 그런 연유로 우리 산악회에서는 삼성산 정상을 바로 알려주기 위하여 몇 년전 이곳에
또 다른 정상석을 설치했었다. 바로 그 정상석 앞에서 오랜만에 한 컷 땡겨보았다.▼
여덟번째 국기봉인 깃대봉 국기봉이다. 장군능선에서 삼막사 방향으로 오다가
깔딱고개를 통과할 즈음 그 좌편에 있는 국기봉을 말한다.▼
9번째 국기봉은 민주동산 국기봉으로, 시흥 방향의 한우물에서 조금 올라오면 좌편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옛 시절 금천구청에 근무할 당시 실로 많이 지났던 능선이다.▼
이제 열번째 국기봉인 칼바위 국기봉을 향할 차례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위험해 보이는 칼바위 국기봉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린 그곳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그곳을 올라야만 하는 것이다.▼
인증샷용 팜플렛을 가슴에 대고 찍은 사진을 보니 오래 전 "이산가족 찾기" 때의 영상들과
닮은 꼴 같다.▼
칼바위 국기봉의 답사를 마치고 마지막 국기봉인 돌산 국기봉으로 향할 차례이다. 이제 달랑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는 여유 때문일까? 이들의 모습에서 장장 10시간 가까운 산행을 한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 코스인 11번째 국기봉. 돌산 국기봉에 이르렀다.▼
허무했다. 몸의 피로가 엄습해 왔다. 어렵사리 설정한 목표를 달성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달성한 목표는 이미 목표가 아니었다. 이제 목표가 없어졌으니 허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을 것이다. ▼
목표를 정하자, 어서 빨리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자. 그리하여 마음 속의 허무와 몸의 피로를
잊도록 하자. 잠시 뒤를 돌아봐라, 우리들의 뒷편에서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대가 우리들의
빈 구석을 채워주며 응원을 약속하지 않는가. ▼
연주대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을 상징하는 상아탑인 웅비의
서울대학교 캠퍼스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