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사진첩/구체구

아~! 물의 나라, 구체구

*산울림* 2015. 5. 10. 21:30

 

 황룡에서의 멋진 풍광을 즐기면서 내 눈은 오랜만에 호사를 누렸다. 우린 다시 구체구로 이동했다.

구체구 역시 행정구역은 성도에 속한다. 여기에서 잠시 성도의 도시 개요에 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인구 천만성도(成都)는 우리나라 면적의 약 4배에 이르는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볼거리가 많은 지역 중 하나다. 양자강(揚子江) 상류에 위치해 있으면서 4개

의 강, 즉 양자강, 민장강, 퉈장강, 자링강이 흐르는 곳으로 사천(四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산지와 평원이 물과 한데 어우러져 풍부한 자원과 많은 볼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는데

황룡, 아미산, 장강삼협, 도강언, 구채구 등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이런 연유로 예로부터

'천부지도(天府之都)'라 불리었다.

 

 자원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화하며 문화유산 또한 풍부 할 뿐 아니라 성도를 대표하는 전통공예품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팬더의 고향', '이름난 역사문화의 도시', '천부의

자연풍경'은 성도의 3대 특징으로 손꼽히고 있다.

 

 성도에서도 구체구는 단연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다. 봄철, 구체구의 숲속에서 솟아나는 힘은 나

에게 도덕상의 악과 선에 대하여 그 어떤 현자(賢者)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나는 이미

삶이란 나가 버린 과거에도 다가올 미래에도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만이 온전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여기서 내가 느끼고 체험하는 바로 그것뿐. 그래서 여행은 내가

목 매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인 것이다.

 

 

 

구체구의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머무르게 될 신구체구 관광호텔의 모습이다.▼

 

 

 

중국 쓰촨성의 북쪽에 있는 구체구는 인구 10만 여명의 도시이다. 구체구의 유래는

9개의 장족 마을이 있는 골짜기에서 연유됐다고 한다. ▼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약 40여 분을 올라오니 구체구의 끝머리인 장해였다. 입구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약 4~50 여 km나 된다고 한다.▼

 

 

 측사와구는 낙일랑 폭포에서 장해까지 17km 구간으로 넓은 호수 뒤로 끝없이 펼쳐진 일년

녹지않는다는 설산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다. 장해는 해발 3060미터, 길이

약 5km, 너비 600m, 총 면적 93만 평방미터의 호수로 측사와구 끝에 자리하고 있다.

 

 설산에서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려온 물이 호수를 이룬 것으로 땅에 스며들거나 증발하여

절대 넘치거나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고산지대여서 그런지 이곳에는 특이하게도 적색을 띈 나무가 많이 있었다.▼

 

 

황룡에도 오채지가 있었는데 이곳에도 오채지가 있었다. 이곳 구체구의 오채지는

해발 2995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100.8미터이고, 평균 높이 56m에 총 면

적은 5645평방미터라고 한다▼

 

 

 

 

구채구는 여러개의 풍경구로 되어 있는데 구채구 입구에서 부터 낙일랑폭포까지 이어지는 곳을

수정구라 부르며 낙일랑 폭포에서 장해까지 17km 구간을 측사와구라 불리운다. 수정구는 구채

구에서도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거대한 화분 모양의 <분경탄>, 갈대의 바다라는 이름의 한적하고 고요한 <노위해>, 호수에 비

친 노을의 모습이 한송이의 불꽃같은 <화화해>, 용이 물속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와령해>등이

있다.▼

 

 

지금부터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은 오화해의 멋진 풍경들이다. 황산을 보고나면 다른 산을

보지않고 구체구의 물을 보고나면 다른 물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비취처럼 영롱하고 명

랑한 색을 띈 구체구의 물은 확실히 구체구를 대표하는 미경(美景)임이 틀림없었다.▼

 

 

 

 

 

역시나 물이 있는 풍경은 사람을 한 없이 착하게 만들었다. 문득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을 만나니 내가 세상과 관계를 하면서 남기는 모든 얼룩들을 흡수지처럼 빨아들여 내 안에

서 녹여내고 싶었다. 그리하여 계면쩍은 일도 께적지근한 감정도 남기지 않고 싶었다.▼

 

 

 

 

 

 

 

 

 

 

 

진주탄 폭포로 향하는 물줄기이다. 물은 저렇게 조용히 흐르다가도 일단 폭포만 만나면 요란한

굉음을 내며 시원스레 떨어지게 될 것이다. 물이 흐르는 소리는 여트막한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간헐적으로 끊어지는 낮은 휘파람 소리같기도 했다.

 

또한 그 물소리에는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애처로운 느낌이 배어있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서 터져버릴 것같은 시간보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터져버릴것 같은 시간이 낫다. 불가능한

이어서 하면 안되는 사랑일수록 그 사랑은 무서운 불꽃으로 연명하게 돼있다.▼

 

 

 

 

드디어 물의 나라 구채구를 느낄 장엄한 소리가 들린다. 폭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는

시원했다. 장엄했다. 상쾌했다. 그 어떤 말로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곳이

이름하여 진주해(海)폭포 또는 진주탄 폭포라고 부른다.

 

해(海)를 쓰는 이유는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 호수를 바다로 표현한다고 한다. 부딛혀

떨어지는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진주알 같다고 해서 붙혀진 진주탄 폭포는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구체구를 물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제 알 듯도 했다. 물빛이 아름다운 구체구는

늘 설레임 그 자체였었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분명한 구체구는 봄은 화창하고 여름

은 눈부시고 가을은 아름답고 겨울을 청결하다고 한다.▼

 

 

 

구체구, 때묻지 않은 사람들과 때묻지 않은 자연이 커다란 조화를 이루면서 끝없는

생명의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이다. 아,  이곳에서 살고싶다.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싶

다.

 

만약 내가 이곳에 살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힘들고 지치고 외롭다고 말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고 견딜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구체구는 9개의 장족마을이 있는 골짜기를 말하는데 현재는 9개 마을 중 3개 마을만 개방했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는 마을은 그 중 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백년이 지나도 아니 그 보다 훨씬 많은

수백년이 지나도 자신들만의 속도와 온도를 유지하면서 살것만 같다.

 

 싸울일이 없는 사람들만 모여사는 마을, 어린이가 태어나고 늙은이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계절의

순환처럼 균형있게 이루어지는 마을, 아마도 구체구의 장족마을이 그럴 것 같았다.▼

 

 

 

 

 

 

 

 

 

 

 

 

 

 

 낙석 절개지를 따라 이어지는 길이 그 유명한 차마고도이다.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교환하기 위해 개통된 교역로로 중국과 티베트 네팔 인도를 잇는 육상 무역로다.

이 길은 실크로드보다 200여 년이나 앞선 기원전 2세기 이전부터 존재한 고대의 무역로로 알려져 있다.

 

 해발 4,000m가 넘는 험준한 길과 눈 덮인 5,000m 이상의 설산과 아찔한 협곡을 잇는 이 길을 통해

차와 말 외에도 소금, 약재, 곡식 등의 다양한 물품의 교역이 이루어졌으며, 물품교역 외에도  여러

이민족의 문화와 종교와 지식이 교류되었다.▼

 

 

 

차마고도 아래 편에 "5.12 地震遺址"라는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쓰촨성 대지진은 2008년 5월 12일

오후 2시 28분, 중국 쓰촨성 지방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8.0의 큰 지진을 말한다. 미국 지질조사

국에서 처음 보도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현지에 인민해방군 파병을 지시하였다.사망자 약 69,000명, 부상자 약 374,000명,

행방불명자 약 18,000명, 재산피해자 누계 약 4,616만명, 붕괴된 가옥 약 216,000동의 피해를 야기

했다.

 

특히 학교 건물의 붕괴로 인해 교사와 학생에게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지방 간부의 독직과

부실 공사의 관계가 문제화되었다. 원자비오 총리는 지진 당일에 현지에 들어가 구원활동의 진두지휘

를 집행함과 함께, 매스컴에서는 연일 인민해방군들에 의한 구조 활동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또한, 전국에서 자원봉사자가 달려들고 성금도 많이 기부되었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나라

에 산다는 것이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지진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라고 하니 이에 대한 대책강구가 절실하다 하겠다.▼

 

 

 

 무후사(武侯祠)에 왔다. 솔직히 말해 삼국지를 읽은지도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서 삼국지에 나

오는 수 많은 등장인물들이 기억에도 없고 설사 기억이 난다고 해도 오락가락이다. 그래도 제갈

공명과 유비, 그리고 관우와 장비 정도는 아직 내 기억의 언저리에 남아있다.

 

 무후사의 무후는 제갈공명이 죽은 후 시호인 충무호에서 따온 것으로 6세기 초 당시에 유비를

모신 조열묘와 나란히 세워졌다고 한다. 그 후 14세기 말에 무후사는 조열묘와 병합되어 현재의

정식 명칭은 한조열묘이지만 주군인 유비를 능가하는 제갈량의 재덕을 기려서 무후사라 부른다.

 

 국보 무후사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 삼절(문장, 서법, 석각기술)로 이름이 높은 당비, 촉한

시대에 유비를 받들던 문, 무관 28인의 소상, 제갈량이 남쪽을 정벌할 때 낮에는 밥을 짓고 밤에

는 두드려 경보를 보냈다는 제갈고, 유비의 묘인 혜능 등을 들 수 있다.

 

제갈량(181~234년)은 자가 공명(孔明)이라 제갈공명이라고도 불리며 와룡선생(臥龍先生)이란

별칭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207년에 조조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었던 유비에게 발탁되었으며

이 고사는 삼고초려(三顧草慮)로 유명하다.

 

유비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그에 부응하듯 신묘한 계략으로 보잘것 없는 유비의 세력이 형주와

익주를 차지하고 황제로 칭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명군사(名軍師)로 알려져 있다.▼

 

 

 

 

한소열능(漢昭烈陵)은 황제 유비를 모시는 사당을 말한다.▼

 

 

삼의묘는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의중도원(義重桃園)은 유비와 장비, 그리고 관우가 도원에서 의를 합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이 의형제였다 것은 소설 속의 창작일 뿐이라고 한다. 그럼 여기에서 세 사람의

인물평을 보기로 한다.

 

먼저 유비(劉備, 161~223년)는 고대 황제 중에서도 인자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황제로 공

경을 받고 있다.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는 유비, 장비, 관우를 우환과 재난을 같이하는 의

형제로 묘사했다.

 

장비(張飛, ?~221년)는 용맹하고 굳은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홀로 장판교(長坂橋)에

서 조조(曺操)의 군대를 물리쳤다. 후세들은 장비를 용맹한 장군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다.

 

관우(關羽, ?~219년)은 용맹한 장군으로 중국에서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다. 관우는 다섯관

문을 지나면서 여섯 장수를 죽이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유비의 휘하에 돌아가 고대의 충성과

의리를 지키는 자로 높은 공경을 받아왔다.▼

 

 

금리(錦里)거리라고 한다. 이 거리는 삼국시대의 거리를 재현해 놓은 골목으로 그 시대의

문화를 담은 복장과 건물로 고풍격을 물씬 풍기게 하는 쇼핑 및 맛거리이다. 여러가지 전

통 먹거리 및 다양한 현지 물품 등이 진열되어 있고 세련된 빠나 커피숍들이 널려 있다.▼

 

 

아마도 금리거리는 우리의 인사동 골목과 같은 성격의 골목이 아닐까? ▼

 

낙산대불로 가기 위한 유람선 선착장 주변의 모습이다.▼

 

 

낙산대불은 성도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낙산이라는 도시의 링원산(凌元山)에 조각된 불상이다.
불상의 전체길이는 71M, 머리의 길이가 14M, 발가락 하나에 성인남자 5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어

마어마한 크기의 불상이다.

 

당나라 741년에 완성된 낙산대불은 당나라 승려 해통이 홍수를 막기 위한 기원의 의미로 만들기 시작

하여 90년 만에 완성되었다. 민강[岷江] 강가 서쪽 암벽을 통째로 잘라내 새긴 마애석불로서, 713년

창건된 링윈사의 본존미륵보살이다.


1994년 유네스코(UNESCO)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낙산대불이 있는 링원산(凌元山)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마치 불상이 누워있는

형상이었다. 사진 좌편 중간쯤에 볼록 나온 부분은 부처님의 고추라고 한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