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구간(이티고개~서운산~부소산~위례산~성거산~태조산~유량리고개)
어제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목이 따끔하게 아프고, 몸이 몹시 무겁게 느껴졌다. 목감기 기운이
있었던 것이다. 내일의 금북정맥 마루금 걷기를 앞두고 걱정이 됐다. 평소 잘 아는 이비인후과 병원
에 들러 치료를 받았다.
감기 증세가 물론 초기이기는 하지만 며칠간 푹 쉬면서 몸조리를 잘해 달라는 의사의 특별한 당부가
있었다. 하지만, 정맥산행은 절대 중단할 수가 없는 행사였다. 불가피한 상황을 맞아 단 한 차례라도
빠지는 날이면 후일, 그 빠졌던 구간을 보충하기 위하여 특별한 출혈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맥 산행은 백두대간 마루금 걷기와는 또 다르다. 물론 백두대간 마루금 이어걷기도 한 두 차례 빠
지게 되면 훗날 그 구간을 보충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써야 하지만 요즘은 거의 모든 산악회에서 백
두대간 마루금을 걷고 있기 때문에 정맥산행에 비해 보충하기가 그만큼 수월하다.
그래서 정맥산행을 하는 날이면 몸이 다소 불편해도, 비가 오나 눈이 와도, 바람이 부나, 추우나, 덥
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산행에 나서야 한다. 뿐만 아니다. 그날 만큼은 알짤없이 경조사나 각종 모임
에도 참석할 수 없다. 때문에 사람의 도리마저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비정한 우리 정맥팀의 운명이다. 이번 정맥산행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오늘 새벽에 일어날
때는 어제보다 더 몸이 무겁다는 것을 느꼈다. 아직 사위가 어둠에 묻혀 있는 이른 아침에 무거운 몸놀
림으로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 산행은 이동거리가 무려 27km가 넘는다고 한다. 내 몸의 컨디션이 이렇게 최악의 난조를 보이고
있는 상황인데 과연 나는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그랬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정맥산행
은 모두 다 씹고 소화하여 입에 넣어주어야 받아먹는 안이하고 게으른 산행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산행 일시 : 2015. 2. 15(일)
산행 코스 : 이티고개~서운산~엽돈재~부소산~위례산~성거산~만일고개~태조산~유량리고개
산행 시간 : 7시간 30분
지난 구간 산행의 날머리이자,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이티재이다.▼
아직 시절은 겨울이지만 건조한 날씨 탓인지 칙칙한 빛깔로 나뒹구는 낙엽속으로
발목이 푹푹 빠졌다.▼
서운산성터에 이르렀다.▼
"해발 547.4M",너무 개념없어 보인다. "서운산 정상"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웠을까?
표석을 보니 이 산의 주인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한 서운산이 몹시 서운할 것만 같았
다.▼
서운산은 작년 3월에 시산제 행사가 있었던 곳이라 1년만에 찾게 되는 산이었다. 오늘 산행은
아침 7시 30분터 시작됐다. 때문에 서운산 정상에 올랐는데도 아직 해가 완전히 오르지 않았다.▼
해발 459m의 부소산 정상이다. 오늘은 서운산, 부소산, 위례산 그리고 성거산과 태조산 등
무려 5개의 산을 오르게 된다.▼
이제 우린 위례산을 오를 순서이다.▼
백제 첫 도읍지인 부소령(하남 위례성)이다.▼
이제 위례산은 300m를 남겨두고 있었다.▼
해발 524m의 위례산 정상이다. 앞으로도 우린 성거산과 태조산을 넘어야만
오늘의 목표지점에 이를 수 있다.▼
걸어도 걸어도 길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군사도로를 걸어야 한다. 그것도 비포장길 임도가 아닌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올라야 한다.▼
드디어 해발 579m의 성거산 정상에 이르렀다. 오늘은 겨울날씨 답지않게 포근한 날씨였던지라
몹시 갈증이 생겼다. 물론 겨울철 여느 산행처럼 물을 조금밖에 갖고 오지 않았기에 더욱 애를
태워야만 했었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산인 태조산으로 향할 차례이다. 여기에서 잠시 언급할 일이 있다. 우리 일행이
바로 이곳에 이르기 전 어느 지점에서 어떤 몰상식한 산객(아니 정신이상자로 밖에 볼 수 없는 사람)
으로 인하여 이른바 알바(헛돌이)를 하고 만 것이다.
이유인즉, 오늘 선두그룹의 산행리더가 뒤에 오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땅바닥에 깔아놓은 방향표
시지를 엉뚱한 방향으로 되돌려 놓는 바람에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게 된 것이다.
실로 기가 막힐 일이었다. 어떻게 산을 찾는 사람이 그런 무지몽매한 행동을 할수 있을까? ㅠㅠ▼
어느 정도 예측은 했었지만 오늘 산행은 근래 보기 드문 무척 힘든 산행이었다.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는
산행이었다. 첫째, 몸 컨디션이 난조를 보였기 때문이었고, 둘째 봄날씨를 방불케 하는 포근한 날씨 탓
에 너도나도 몹시 물이 부족해서 힘들었고,
셋째 이동거리가 워낙 길어서 힘들었고, 마지막으로 어떤 무뇌아 산객 때문에 불필요하게 엉뚱한 길을
돌아오는 바람에 힘들었다.▼
조금전에 우린 구세주를 만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다름아닌 산 중턱에서 막걸리를 파는
분을 만났기 때문이다. 타는 목마름에 심한 갈증에 허덕거려야 했던 우리에게 막거리 한 사발
은 그야말로 생명수, 그 자체였다.
자연환경 보호를 위한 측면에서는 당연히 산속 노점행위는 근절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것이 때로는 필요악일 경우도 있다. 오늘 우리가 산길에서 만난 그 분은 적어도 오늘 만큼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분이었다.
천안의 진산인 해발 421.5m의 태조산 정상이다. 이것으로 우린 오늘의 마지막 산에 오른 것이다.
발바닥이 후끈거렸고, 고관절에도 아픔이 있었다. 다리는 거의 마비상태로 내 다리같은 느낌이 들
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산행일지라도 사진 속의 모습은 환하고 밝다.▼
이것으로 힘들고 따분한 장거리 경주가 이제 그 끝을 보게 되었다. 마치 문맥도 뜻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 지루하고 따분한 문장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되듯이 말이다. 그렇다. 그날
산행의 끝이나 문장의 종지부는 그 산이나 한 문장의 종결을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산을 시작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문장의 시작을 위해서도 마땅히 있어야 할
매듭인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산을 고집하고 산행기를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은 오
늘 산행의 날머리인 유량리 고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