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세계/모락산 통신

행복에 관한 단상

*산울림* 2015. 1. 29. 23:14
 

 시내로 향하는 출근길 전철 안은 늘 복잡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들은 확률적으로 보면 나보다 훨씬 멀리 사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출근 시간도

그만큼 서둘러야 했을 테니 그 정도의 혜택은 충분히 누릴만한 일이었다.

 

 경로석에서는 할아버지 몇 분이 눈을 지긋이 감은 채 명상에 잠겨있었고, 어떤 중년 신사는

집에서 미처 읽지 못 했던지 주위 사람들의 눈치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리저리 접어

가며 조간신문을 읽고 있었고, 또 몇 사람은 간밤에 부족했던 잠을 보충이라도 하듯  천정에

매달아 놓은 손잡이를 붙들고  아슬아슬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어떤 젊은 여성들은 자리에 앉아 열심히 화장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결코 보기 좋은 풍경은 될 수 없었다. 게으른 여자의 깔끔치 못한 얼굴도 아름다울 수 없

겠지만 그렇다고 전철 안에서의 화장도 보는 이들의 눈총을 받을 만했다.

 

 그밖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듯싶었으며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한결같이 머리를 숙이고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모르고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누군가와 빠른 손놀림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으며,

 

 또 다른 어떤 이들은 DMB를 시청하거나 SNS의 글을 읽고 있었다. 단언컨대 어쩜 이 글을 읽

고 있는 당신도 출근길 전철 안에서는 이같은 유형 중 어느 하나를 연출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

리라. 이른 아침 출근길 전철 안의 풍경은 대개이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30대쯤으로

이는 한 여성의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내 눈 안으로 빨려들어 왔다.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루한 시간을 달래고 있을 즈음에 그녀만이 홀로 책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녀가 읽고 있는 책장을 곁눈질해 보니 청마의 행복이란

시였다.

 

 언제부턴가 시를 읽는다는 당연한 이 사실이 새삼스레 기특하고 신기하게 여겨질 만큼 오늘의

우리들은 가슴이 너무 메말라버린 것이다. (), 그 얼마나 아름답고 간절한 이름인가? 그것은

인생의 슬픔과 괴로움, 사랑의 아픔과 그리움을 위무하고 포옹하는 애틋한 것이다.

 

그것도 화려한 수사의 나열이나 값싼 감상의 토로가 대부분인 요즘의 시가 아니라, 청결하고도

드높으며 외로운 이름인 청마 유 치환의 명시 행복이 아니던가?

 

시를 읽으면 품성이 맑아지고 언어가 세련되며 물정에 통달되니 수양과 사교 및 정치생활에

도움이 되고, 시를 읽지 않으면 사람은 마치 바람벽을 대하는 것과 같다.”는 공자의 말을 굳이

인용치 않더라도  지하철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공공장소에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도

나만의 소중하고 행복한 공간을 만드는 아름다운 일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책을 읽는 습관을 공유하는 사이가 점점 적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내가 살

고 있는 세상을 재발견하기 위해서도, 모르는 세상으로 한 발 더 다가가고 싶어서라도, 시끄럽게

드는 취객의 말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책을 많이 읽으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어릴 적 가르침이 비록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

었다 하더라도 책을 읽자. 보다 좋은 책을 보다 많이 읽자. 출근길 비좁은 전철 안에서도 책을 읽

는 한 아름다운 여성을 본받기로 하자.

 

 오늘 하루 행복하셨나요? 오늘도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행복을 좇아 살아간다. 행복

이란 과잉과 부족의 중간에 있는 조그만 간이역이라고 한다. 오늘 나 역시 전철 안에서 그녀가 그

랬던 것처럼 새삼 유 치환의 행복이란 시를 읽으며 다시 한 번 행복에 젖어들었다.

 

 

행 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2011년 여름, 호주 연수차 들렀던 시드니 항에서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