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B.C트레킹(하편)
M.B.C 에서 트레킹 셋째날을 보냈다. 어젯밤엔 몸은 피곤했지만 잠이 쉽게 오지않아 롯지밖으로 나와
별 구경을 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바라보는 별들이었다.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과 슬픈 것들이 있고
그 둘이 같이 합쳐져 별이 된다고 한다.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하늘의 별들이 위치
를 바꾸는 것이었다. 내 머리 위의 별이 움직였다.
감정이 복받쳐올랐다. 복받쳐오르는 슬픔이 눈물이 되어 내 얼굴에 흘러내리고 내 가슴은 형언할 수 없
는 비애로 찢어지고 있었다. 나는 흐느끼며 울고 싶었다. 왜 별들을 보면 감정이 축축해지며 옛생각이
떠오르는 걸까? 별과 인간의 감정과는 어떤 상관관계일까? 많은 시인들은 그 축축해지는 시상을 노래
했을 뿐 그 이유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오늘은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를 만나려 가는 날이다. 온 몸이 쑤시고 결려 옴짝할 수가 없었다. 문득
두고 온 산하에 대한 그리움이 솟았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약해져 전에 없던 향수에 젖게 된 것이다. 큰
일이었다. 오늘 트레킹은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시작된다.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별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니 하늘 또한 맑은 듯싶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늘 내 가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던 고산병으로
부터 해방됐다는 점이었다. 일행 중 몇몇 분은 고산병을 토로하기 시작했지만 신기하리만큼 내겐 전혀
티도 없이 고산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건강하게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가는 거다. 안나푸르나를 향하여 가는 거다. "앞으로 갓! 내 머리가 내 다리에게 명령했다.
자~! 이제부터는 내 정신을 육신으로, 내 육신을 정신으로 채우도록 하자. 풍요의 여신을 알현하기 위해
서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다행히도 "안나푸르나"라는 자연이 주는 뭔가 특별한 기운 때문인수면부족으로 인해 머리가 띵하고 눈이 침침한 증상 같은 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과연 안나푸르나는 어떤 모습
으로 내게 투영될까? 롯지에 가까워질수록 내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안나푸르나, 그곳은 흰눈 덮인 아득한 설원이었다. 한발 한발 내딛는 순간 허리까지 쑤욱 허물어져 가는 지친 몸.
온 세상이 흰눈에 뒤덮히고 말았다. 히말라야 산맥은 온통 설국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침묵에
잠기고 흐르는 시간마저도 눈 속에 잠겨 잠시 멈춰선 듯..그리고 그 침묵의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만이 그렇게
그렇게 산자락을 휘감고 있었다▼
드디어 해발 4,130m의 A.B.C에 이르렀다. 목표지점에 오르고보니 나그네의 우수가 물밀듯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