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2013. 6. 28. 15:12

 

 

오늘 산행 들머리는 도래기재이다. 도래기재 주변은 춘양고을이다. 춘양하면 우선 "억지춘향"

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전에도 올라와 있는 그 뜻은 "일을 순리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우겨 겨우 이루어진 것을 이르는 말"이다. 춘향전의 변 사또가 춘향으로 하여금 억지로

수청을 들게 하려고 핍박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 봉화사람들은 이곳 춘양고을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경북 영주에서 강원도 철암

을 연결하는 철도인 영암선(현 영동선)중 이 구간은 철도가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춘양면 소재지

를 한 바퀴 곡선으로 휘감고 지나간다. 당시 직선 공사가 90퍼센트 이상 진척되었는데 춘양면

서벽리에 고향을 둔 힘있는 어느 자유당 국회의원이 억지로 철도를 우회시켜 공사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얘기들을 재삼 음미하면서 여유롭게 대간길을 통과할려는 내 생각은 어젯밤 폭우

속을 뚫고 집을 나서면서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그렇잖아도 평소 빗길산행을 탐탁치

않게 여겨왔는데 하물며 무박으로 떠나는 장시간의 대간산행에서 이렇게 많은 비가 올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어쩔 것이냐? 내가 스스로 택한 길...비를 두려워 백두대간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새벽 3시 40분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피해 도래기재의 생태육교에서 분주하게 산행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도래기재를 지나면서 이제 온전히 태백산의 품으로 들어섰다. 하늘을 향해 쭉 뻗어있는 금강소나무의

모습이 보고싶었지만 칠흑같은 어둠 속에 그것도 강한 빗줄기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조선시대

이래 궁궐을 짓거나 임금의 관을 짜는데 주로 쓰여 왔으며 일제 강점기 때 우수한 금강소나무들이 춘

양역에서 반출되었기 때문에 춘양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빗속을 뚫고....어둠을 뚫고 본격적으로 대간 길에 들어섰다.사진 속의 나무(노란줄이 그어져있는)

아마 금강 소나무인듯 싶다.▼

 

해발 1345미터의 구룡산에 올랐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강원 영월군 상동읍 사이에 있는 산이다.

태백산(1657m), 청옥산(1277m), 옥돌산(玉石山,1177m) 등과 함께 태백산령에서 소백산령이

갈라져 나가는 곳에 있다. 이 산에서 발원하는 하천들은 남북으로 흘러서 각각 낙동강과 남한강

으로 흘러 들어간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한 산이라고 하여 구룡산이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오다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뱀 봐라" 하면서 꼬리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용이 떨어져 뱀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 뱀이 어떤 뱀인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그랬을 것

같지 않다. 도래기재를 출발한지 두시간 남짓 지났지만 아직 사위는 어둡고 빗줄기 또한 줄어 들

기미가 뵈지 않았다.▼

 

역시 구룡산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길라잡이다. 걸어온 길(5.54킬로미터)보다 가야 할 길이 아득하다.▼

 

참새골 입구에서 ▼

 

곰넘이재에 도착했다. 이 고갯길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주로 태백산으로 천재

지내러 가던 사람들이 넘던 고개이다. '신(神)'이 있는 곳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곰(검신)님이'라고

불렀던 고개이다. '곰'은 '검'에서 나온 말로 '신(神)'을 의미하는 말이다. ▼

 

차돌배기 삼거리이다. 차돌배기 삼거리는 지나가는 행락객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옛날 이 자리에

차돌이 박혀있었다 하여 차돌배기라 전하여 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이곳에서 비를 맞어가며

간단히 식사를 하였다.▼

 

차돌배기 안내판 ▼

 

신선봉(1300m)에 올랐다. 빗길 질퍽질퍽한 등반로를 걸어서일까? 따스한 햇살이 너무 그리웠다. ▼

 

신선봉을 지나 깃대배기봉(1370m)을 향했다. 산은 참으로 정직하다. 올라온 만큼 반드시 내려가야

한다. 삶도 이와 같다. 오른 만큼 내려가야 하고, 얻은 만큼 베풀어야 한다. 정직하지 못한 삶도 있다.

얻기만 하고 베풀지는 않는 삶이다. 오르기만 하고 내려가려고 하지 않는 삶이다.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을 망치고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일이다.

깃대배기봉(1370m)에 올랐다. ▼

 

또다른 깃대배기봉 정상석 ▼

 

부쇠봉입구 삼거리에 도착했다. 해발 1450 미터의 부쇠봉을 불과 400미터 남겨 둔 지점이지만

모두들 힘들고 지쳐있었다. 곧바로 태백산으로 직진할까? 부쇠봉을 들려갈까? . 하지만, 부쇠봉

이 엄연히 백두대간 길인데 힘들다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

 

마침내 민족의 영산 태백산 정상에 올랐다. 해발 1566미터의 태백산은 백두산으로부터 낭림산, 두류산,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그리고 청옥산과 두타산을 지나며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의 맥이 크게 용트림한

산이다. 다른 산들과 달리 태백산의 주능선 일대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평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부드러운 능선이다. 나무 한 그루 없고 커다란 바위 하나 없다. 그저 마른 풀만 바람에 흩날릴

뿐이다. ▼

 

거대한 초지의 영봉 한가운데 천제단(天祭檀)이 있다. 이곳에서 우리 민족은 예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동국여지승람은 '태백산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태백산은 민족의

이름이 된 산이다. 태백산(太白山)은 '크게 밝은 산'이라는 의미이다. '크게 밝은 산'의 순 우리말은

'한밝뫼' 또는 '한밝달'이다.

 

'한밝달'이 '한백달', '한배달'로 전음 되어 '한민족', '배달민족'같이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이름이 된

것이다. 예부터 우리민족은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제사 지내던 산을 '밝은 산'(白山)이라고 부르며

숭앙했다. '밝은 산' 중에서 가장 '크게 밝은 산'이 바로 태백산(太白山)인 것이다.▼

 

태백산 한배검 ▼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인 화방재(花房嶺, 939m)로 내려섰다. 봄이면 고갯마루 부근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타올라 꽃방석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어평재'라고

부른다. '어평'이라는 마을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평'이란 이름은 단종과 관련이 있다. 죽어 태백산의 산신이 된 단종대왕의 혼령이 "이제부터

내 땅(御坪)이다."라고해서 '어평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단종에 대한 애틋함을 오늘날 까지도 품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화방재'보다는

'어평재'라 부르는 것이 좋아 보인다. 어평재의 하늘은 오늘따라 어둡기만 했었고 내리는 봄비에 서글

픔도 함께 내리고 있었다. ▼

 

산행 일시 : 2009.3.21~22(토요 무박)

산행 코스 : 도래기재~구룡산~곰넘이재~차돌배기봉~신선봉~부소봉~태백산~화방재

산행 시간 : 약 11시간

안내 산악회 : 안양 산죽회

 

<100대 명산 선정사유>

예로부터 삼한의 명산이라 불리었으며 산 정상에는 고산 식물이 자생하고 겨울 흰 눈으로

덮인 주목군락의 설경 등 경관이 뛰어나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89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삼국사기에 따르면 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에서 왕이 친히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음. 망경사, 백단사 등이 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