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2013. 6. 28. 11:33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신지 18일째 되는 날이다. 오늘쯤은 산행을 하여도 되는 것일까?

어머님을 떠나보내신데 대한 죄인으로서 자숙의 의미에서라도 아직은 산에 오르는 것이

시기상조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이번 산행은 갈등이 많았다. 물론 수 주 전에

산행신청은 이미 해놓은 상태였다.

 

결론은 산행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산악회로서는 보기 드물게 수 많은 분들이 문상을

다녀가셨는데 그 분들에 대한 답례의 의미로라도 산행에 참여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돌아가신 어머님께서도 너그럽게 이해를 해주실 것 같았다. 다만, 산행지가

멀리 경상도 땅이라서 당일치기로는 부담이 가는 산행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여느 때 산행처럼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무엇인가가 텅빈 것

같았고 몹시 허전하고 쓸쓸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바로 그것

이었다. 예전에 같으면 어머님께서 친히 현관문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셨는데 그리고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는데 지금은 그러신 분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머님의 빈자리가 벌써부터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그 빈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아, 이제 나는 그 빈자리를 어떻게 메워가며 살아갈 것인가?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쉽게 재충전되지 않을 때는 두고두고 어머님의 그 빈자리가

뻥 뚫린 구멍처럼 크게 아주 크게 느껴질텐데....

 

 

 

 

 

 

산행 일시 : 2011. 4. 10(일)

산행 코스 : 유동마을~산성터~황석산~북봉~거망산~용추사

산행 시간 : 약 6시간

안내 산악회 : 안양 산죽회

 

 

우리를 태운 버스는 안양에서 4시간 여의 먼 길을 달려와

산행들머리인 유동마을에 멈춰섰다. ▼

 

완연한 봄 날씨를 뛰어넘어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산 입구에 있는 길라잡이다.

황석산 정상까지는 4.2km였다. ▼

 

어느 집앞에서는 하얀 벚꽃이 곱게 피어나고 있었다. ▼

 

본격적으로 산길에 접어들었다. 땀이 몹시 흘러내렸다. 어머님을 향한 그리움이

땀이 되어 흐르는 것 같았다.자로 잴수도 없는 그릇에 담을 수도 없는 땀방울들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어머님을 향한 그리움도 함께 내렸다.

 

앞에 우뚝 선 봉우리가 황석산의 정상이다. ▼

 

황석산은 이제 600M를 남겨두고 있었다.▼

 

황석산성이다. 이 성은 소백산맥을 가로지르는 육십령으로 통하는 관방의 요새지에

축조된 삼국시대부터의 고성이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초기에 수축한 바 있고 임진

왜란이 일어났던 선조때에 커다란 싸움이 있었던 유서깊은 성터이다.

 

선조 30년 왜군이 다시 침입하자, 세찰사 이 원익은 이 성이 호남과 영남을 잇는 요

새로 왜군이 반드시 노릴 것으로 판단하고 인근의 주민들을 동원하여 지키도록 하였

다고 한다.▼

 

정상을 향한 길은 암봉으로 둘러싸인 험로였다. 힘이 들었지만

반드시 올라야 하는 길이었다. ▼

 

해발 1190M의 황석산 정상이다. 그런데 정상석은 사라지고 정상석을

올려놓은 듯한 자리만 남아있었다. 정상석은 강풍에 날아가버렸다고

한다. 어머님이 계시지 않은 허전한 나의 마음처럼 정상석이 사라져간

그곳도 쓸쓸하기만 하였다.▼

 

 

정상을 거쳐 다시 되돌아 와서 우회를 하는 길이 안전한 길이고, 직접 내려가는 길은

위험한 길이라고 산행리더의 분명한 설명이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위험을 무릎쓰고

직접 내려가는 험로를 택하였다.▼

 

예전에 내 어머님께서도 매번 산행시마다 각별한 안전

산행을 주문하곤 하셨는데.....▼

 

안내판을 보니 험로임이 분명했다.▼

 

지나 온 황석산 산성터의 모습이다. 저 길을 넘어왔다니 저렇게 험한 길을

걸어왔다니 참으로 아찔한 길을 걸어 온 내 자신이 믿겨지지 않았다. 이제

우린 거망산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퇴색된 길라잡이의 모습을 보니 새롭게 단장된 상큼한 모습의 길라잡이가

아쉽다. 거망산 정상은 4.3km를 남겨두고 있다.▼

 

능선 삼거리이다. 거망산은 아득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아, 나른한 봅날의 산길은 유난히 힘이 들었다. 오늘따라 산길을 걷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마냥 경쾌해야 할 산길, 마냥 새로운

느낌이어야 할 산길, 그런데 오늘 산길은 경쾌하지도 새롭지도 않은 그저

힘만 드는 산길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 산길이 힘이 드는 이유를 찾는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바로 내 어머님이셨다. 어머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시기에 산길이 팍팍하고 힘이 든 것이다. 앞으로도 산길은 예전 같지않게

힘이 들 것이다.

 

비단 산길 뿐만 아니라, 내 인생여정도 오늘의 산길처럼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우리 어머님은 예나제나 항상 변함이 없이 내 곁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힘들게 힘들게 해발 1184m의 거망산 정상에 올랐다. ▼

 

새롭게 설치된 정상석이다. 거무잡잡한 돌에 빨간 글씨가 이채롭다. ▼

 

이제 하산 길이다. 오르는 길만큼이나 내려오는 길도 여의치 않았다. 퍽이나 지루한

길이었다. 같은 하나의 산이었지만 어느 곳은 더운 열기가 어느 곳에서는 저렇게 하얀

눈이 쌓여 있는 곳이 있었다. 양극화 현상은 대자연에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이제 지루한 하산 길도 마침표를 찍어가고 있었다. 용추계곡의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맑고 투명하게 흐르는 물에 몸을 맡겼다. 무수히 흐르는

땀 방울에 젖어 든 내 육신을 씻고 또 씻었다. 어머님을 여읜 죄인이 그의

육신을 닦고 또 닦았다.

 

용추사 입구이다. ▼

 

산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젠가 오르게 될 기백산이 이곳에서

불과 4.2km의 거리에 있었다. ▼

 

용추(龍湫)폭포이다. 이 폭포는 높이가 15m이며 수심은 십수미터 된다고 한다.

항상 수량이 풍부해서 인근의 지리산 덕유산 계곡에서는 그 규모가 가장 큰

편이다. 장마 때면 계곡의 초입에서부터 웅장한 폭포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폭포 아래서 몇 분만 앉아있어도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물방울이 분무된다.

 

이 폭포에는 물레방아 굵기의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이 이무기는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는 계시를 받게 되었다. 이후 이무기는 온갖 고난을 참으며 매일매일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내일이면 108일을 다 채우는 날이다.

이무기는 용이 된다는 기쁨에 그만 날짜도 잊고 있는 힘을 다해 하늘로 치솟았다.

 

동시에 천둥이 치며 벼락이 이무기를 향해 때렸다. 벼락을 맞은 이무기가 공중에서

요동을 치다가 인근의 위천면 서대기 못에 떨어졌고, 서대기 들은 이 이무기의 썩은

물로 3년이나 거듭해서 풍년 농사를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

 

뒤풀이를 벌인 주차장 언덕에는 멋진 소나무가 있었다.

내 어머님의 성품처럼 참으로 기개있고 올곧은 소나무였다.▼

 

 

 벚꽃 행락객들이 대거 귀경하고, 또 거리가 거리인지라 우린 꽤나 늦은 시각에

귀가할 수 있었다. 등산복과 등산용품을 대야에 가지런히 모아 세제를 풀어두었

다. 불현듯 또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등산복의 손빨래는 늘 어머님의 몫이었

는데 아~ 이제 뉘라서 그 빨래들을 정성스레 처리하여 줄 것인가,

 

죄많은 나는 어머님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아, 어머님의 마지막 순간의 모습

이 가슴에 사무친다. 자식을 찾다가 찾다가 끝내 눈을 감아버리신, 그래서 꼭 무슨

말을 남기고 싶으셨는데 결국 남길 수 없었던 어머님의 그 모습을 생각하는 이 순간, 가슴

이 미어지는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알고있다. 어머님께서 내게 남기고자 하신 소중한 언어들을........

그러니 어머님, 이제 마음 편히 영면하소서~!

 

<100대 명산 선정사유>

거망에서 황석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는 광활한 억새밭 등 경관이 아름답고

황석산성 등 역사적 유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정유재란 당시 왜군

에게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사람들이 성이 무너지자 죽음을 당하고 부녀자들

은 천길 절벽에서 몸을 날려 지금껏 황석산 북쪽 바위 벼랑이 핏빛이라는 전

설이 있는 황석산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