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 사진첩/일반 사진첩

아~! 분단의 현장, 전방 나들이...

*산울림* 2013. 6. 18. 10:49

 

 

 

사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이 살아 온 흔적을 추적해보고 싶은 본능이 강해진다고 한다. 쏜살같이 달리는

세월이라는 시계, 그 시계가 어느 순간 고장이라도 나버렸으면... 그래서, 세월이 잠시 정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갖을 법한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억지 논리일 뿐이다. 설령 세월의 시계가 고장난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은 시계만 고장 나는 것일 뿐 세월은 변함없이 흘러 갈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역시 영민하다. 살아오면서 억지와 순리를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을 터득했다. 이제 살아 갈

세월이 살아 온 세월보다 훨씬 짧다는 걸 힘 안들이고 눈치챘다. 그래서 지나 온 세월의 흔적을 느껴보고 싶

어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군복을 벗은지도 벌써 40년 가까이 돼가지만 아직도 가끔씩 꿈속에 나타날 정도로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물론 군시절 근무지는 당시 전우들이 다시 뭉쳐 종종 다녀오곤 했다. 지난 해 이맘 때도 다녀왔었다. 올해에도

또 다녀오고 싶었다. 당시 사령부에 근무했던 우리들은 전우애가 남다르다. 전역 후에도 그 기나긴 세월동안

1년에 몇 차례씩은 꼭 만나 당시를 회고하며 의미있는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근무지 방문은 색다르게

계획했다. 작년처럼 부대방문은 하지 않고 그 대신, 승리전망대 등 분단의 현장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나들이 일시 : 2013. 6. 15(토)

나들이 코스 : 부대~ 승리전망대~ 파로호~ 평화의 댐

참여  인원  : 13명

 

 

 

 

일명 캐러멜 고개라고도 불리우는 광덕고개 정상이다. 이 고개는 아흔아홉굽이 구절양장으로 당시 비포장

도로였던 이 고개를 넘노라면 간담이 서늘해지곤 했던 고개이다.  지금은 말끔히 포장돼서  그 시절처럼

아슬아슬 스릴은 느낄 수 없었지만 안전도는 크게 높아졌다. 오늘 문득 이 고개를 넘으면서 또 한번 느꼈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만, 오직 하나, "모든 것은 변한다." 는 사실 뿐...

 

 

 

이곳은 한북정맥의 마루금으로 중간지점에 보이는 등산로는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이다.

 

 

 

전면에 보이는 산줄기는 수피령고개에서 복계산. 복주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의 산줄기로

그 동안 수차례 걸었던 산길이다. 지금 다시 보니 문득 그리움이 솟아났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산하를 보면서도 그리움이 솟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까닭없는 그리움에 젖어보는 나이, 그리고 그 그리움의 힘으로 살아가는 나이이기 때문

인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추억속에 그리움과 환멸감이 뒤엉켜 어지럽다.

오뉴월, 실크보다 보드라운 미풍이 불어왔다. 주변의 잡초들이 춤을 추듯 흐느끼기 시작했다.

 

 

 

 

 

광덕고개를 출발한지 한 시간 남짓 걸려 승리부대인 옛 근무지에 도착했다.

 

 

 

 

 

작년처럼 부대 방문은 하지 않고 먼 발치에서 그냥 부대 입구만 쳐다보았다.

 

 

 

보이는 하얀 건물은 당시 우리가 사용했던 목욕탕 건물이다.

 

 

 

 

 

 

 

 

아, 이곳에서 본 산하는 모두 초록이다. 초록은 평화의 색깔이기도 하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라. 온 세상이 초록이니 평화가 거저 올것이라는 것을..

 

 

 

승리전망대를 관람하기 위해서 매표소에 이르렀다. 안내원이 오후 1시 30분에 출발

한다고 한다.  40 여분의 여유시간이 있었다. 인근 마을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이 마을은 1968년 8월에 민통선 전략촌 건립계획에 따라 조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승리전망대에 이르렀다. 이 전망대는 2001년 12월에 설치됐다고 한다.

 

 

 

 

 

승리전망대, 서울역에서 이곳까지는 108km, 춘천에서는 74km로 휴전선 155마일 중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오늘따라 기상상태가 좋아서인지 북한군 교육장과 북측

아침리 마을이 망원경을 통해 보였다.

 

 

 

중앙에 나무띠로 이어져 있는 부분이 휴전선이고 산 중턱으로 난 길처럼 보이는 곳이 북방한계선이다.

여기서 잠시 휴전선과 비무장지대, 그리고 남.북방 한계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른바 DMZ

(비무장지대)는 전란중 유엔 소련대사가 휴전요청,  미군과 북한군과의 정전협정으로 휴전선에서

남과 북이 각각 2km씩 후방으로 물러서면서 중간에 폭 4km를 비무장지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폭 4km로 돼있었지만 북측에서 임의로 북방한계선을 1km 정도 휴전선으로

앞당기고 우리도 비무장지대를 줄이는 바람에 현재 비무장지대의 폭은 약 1.8km로 좁혀져 있다고

한다. 비무장지대에는 철새가 날아들고 고라니, 산양, 토끼들의 놀이터가 되는 등 생태자원의

다양성이 온전히 보존되는 지역이다.

 

하지만, 비무장지대는 여전히 아픔의 땅이다. 비무장지대, 이름만 들으면 평화, 그 자체이겠

지만 오늘도 비무장지대는 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풍광속에 숨 죽인 동족의 긴장이 웅크리고 있는

지역임이 틀림 없었다. 냉전의 역사가 말 없이 그대로 숨어 있는 곳이다.

 

 

 

아마 이 사진은 tv 등 메스컴을 통해서 수 없이 봐왔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눈에 친숙한 장면이다.

좌측에 보이는 초소가 우리 측 초소이고, 중앙부분에 하얗게 흐르는 곳이 남대천이다. 휴전선, 그리고

비무장지대, 사람이 만들어 놓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

 

그러나, 몸은 금방이라도 날 것처럼 등등해졌고 눈은 가장 멀리를 볼수 있을 정도로 씻겨져 있었

으며 심장은 모든 풍경 위로 미끄러져 들어갈 정도로 이완되어 있었다. 어쩜 이곳은 자연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정신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내 마음을 도드라지게 하는 풍경은 이곳이 바로 금단의 땅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린 승리전망대를 떠나 파로호에 이르렀다. 현재 시각 오후 3시 30분,

그러고 보니 우린 오직 안보에만 정신이 팔려, 여태 점심을 거른 것이었다.

이곳에서 매운탕을 시켜 먹었다.

 

 

 

파로호, 파로호의 원명은 화천호였다고 한다. 그런데 6.25전쟁때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중공군 30,000명을 수장하는 혁혁한 전과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 승만 대통령은

이 전승을 기념하기 위하여 "오랑캐를 격파(破)"했다는 의미로 "파로호"로 명명했다고 한다.

 

 

 

우린 다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이른바 "평화의 댐"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 동안 평화의 댐은

몇 차례 다녀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별 관람거리가 못된다는 주위사람들의 말에만 순종

하는 바람에 그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누가 뭐래도 무조건 무조건이었다. 더우기 오늘만큼은 철저히 국가안보에 관해 심층

생각해보는 시간으로 갖겠다는 야무진 포부가 있었기에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