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2011. 5. 21. 23:54

 

 

지난 주에는 고향 남녘에 위치한 어머님 묘소에 다녀오느라 불가피하게 토요산행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 동안 산행기에서도 누차 언급했던 것처럼 매주

주기적으로 산행을 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산행을 못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면

내 인생이 그곳에서 딱 멈춰버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하였다.

 

지난 주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차선책으로 일요일에 교회를 다녀와서 삼성산에는

올랐지만 명산이 즐비한 지방산과 수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삼성산

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관악산 줄기인 삼성산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삼성산 역시 우리가 가꾸고 사랑해야 할 그래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연유산의 하나이다. 그런데 삼성산을 위시해서 작금의  근교산은 어떤가?

우선은 사람에 치여 산길을 제대로 걸을 수 없다. 모처럼 닫혀진 마음의 창문을 

열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소박한 당초의 뜻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또 한가지, 지방산에 비해 근교산에서는 산행예절이 없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산에서 고성을 지른다거나 휴대전화, 라디오, MP3 등속세의 문명음을

여과없이 들여와서 터트리는 바람에 얼굴을 찌푸리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어디

그뿐인가? 과도한 음주도 문제이고, 아직도 산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이 엄존한다.

 

그런데 유독 근교산에서 이런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그것은

지방산에 비교해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잇점 때문에 수 많은 등산객들로

인산 인해를 이루면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현대

사회의 고질병의 하나인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가 한 몫했으리라 본다.

 

물론 지방산이라고 해서 이와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광경들을 목격하지 말란

법은 없다. 다만, 근교산에 비해 덜할 뿐이다. 그것은 우선 등산객의 수에서

차이가 있고 또 그런 모습들을 보기 싫어 근교산을 기피하고 지방산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에서 나의 경우에도 왠만하면 지방산행을 고집하곤 한다.

오늘도 당연히 지방명산을 찾기로 하였다. 장안산, 100대명산 중 아직 못 가본

5개 산 중의 하나이다. 오늘 산행을 마치고 나면, 이제 백대명산 중 미답의 산은

적상산,응봉산, 연화산,대암산 등 4개로 줄어든다.

 

 

 

산행 일시 : 2011. 5. 21(토)

산행 코스 : 무령고개~영취산~무령고개~장안산~백운산~도곡고개~밀목치

산행 시간 : 약 5시간

안내 산악회 : 송백산악회

 

 

오늘산행의 들머리인 무룡고개였다. 무룡고개가 맞는 것인지 아니면 무령고개인지

이곳에서는 무룡고개로 각종 지도에는 무령고개로 표시되어 헷갈리기만 하였다.▼

 

 

 

어쨌무룡고개는 나와 인연이 많은 고개이다. 2009년 겨울, 백두대간이 한참

진행중이던 때에 나는 우리 막내이와 함께 이곳을 다녀갔다. 그런데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씨가 갑자기 악천후로 변하여 눈이 펑펑 쏟아지고 매서운 북서풍이 온 몸을

할퀴며 불어닥치고 있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는 관계로 도로가 미끄러워 차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고 하여

우린 산행 들머리인 무룡고개에 훨씬 못 미치는 지점에서 하차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우린 들머리인 무룡고개까지 무려 40 여분을 걸어야 했었다. 아래 사진은

당시 무룡고개의 모습이다. ▼

 

 

 

무룡고개의 현재 모습이다. 도로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장안산이

왼편으로는 영취산으로 향하는 산길이 나온다.▼

 

 

 

또 다시 무룡고개의 모습을 담은 당시의 사진첩을 들춰보았다. 무룡고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무시로 백두대간을 넘나들었고 주민들은 아직 호랑이가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믿는 고개이지만, 백두대간 종주자들에겐 여전히 쉼터로 사랑받고 있는 고개이다.

 

 

 

당시 하산하여 막걸리 몇 잔을 마시며 추위에 언 몸을 녹혔었던 벽계 쉼터이다.▼

 

 

 

오늘 산행은 백대명산인 장안산이 목적지였지만 어차피 무룡고개까지 왔는데

바로 지척에 있는 영취산을 외면한다는 것은 산꾼의 도리가 아닐 듯 싶었다.

추운 겨울에 맞이하는 영취산과 신록이 우거져 가는 5월에 보는 영취산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어서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아래 사진은 겨울 산의 모습이다.▼

 

 

 

 

푸른 5월에 보는 영취산 정상주변의 모습이다. 영취산은 '신령 령(靈)'에

'독수리 취(鷲)'자를 쓰는 산 이름 때문이었을까. 숲은 신비한 기운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

 

 

 

오랜만에 영취산 정상에서 백두대간 마루금의 길라잡이를 보았다. 중치 8.2km

육십령 11.8km,  그 이름들이 그리웠다. 그 이름 하나 하나가 정겨웠다.▼

 

 

 

영취산은 백두대간에서 매우 중요한 산이다. 새로운 산줄기 금남호남정맥이

시작하는 곳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봉화산,백운산을

거쳐 육십령으로 북상하는 길에 있는 산이다. 금남호남정맥은 영취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힘차게 뻗어 있다.

 

바로 무령고개를 지나 장안산(1,237m)에서부터 무주의 주화산(600m)까지

이르는 65km에 달하는 산줄기이다.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이어주는 산줄기이기도 하다.

 

 

 

영취산에 들러 간단히 인증 샷을 터트린 후 다시 무령고개로 내려왔다. 오늘의 목적지인

장안산을 오르기 위해서이다. 장안산으로 향하는 산길이 보인다.▼

 

 

 

금남호남정맥의 기봉인 장안산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 장계면, 계남면, 번암면의

중앙에 솟아있다. 장안산은 주변 일대의 계곡과 숲의 경관이 빼어나게 수려하여

덕산계곡, 용소의 비경 등이 있는 일대가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여름에는 피서지.

가을에는 장안산 억새와 단풍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초반부터 목재테크로 이어지는 산길이 시작된다.▼

 

 

 

장안산은 2.70km의 거리에 있었다.▼

 

 

 

싱그러운 숲길을 따라 걸어나갔다. 하늘은 흐렸지만 숲이 온통 푸르다 보니

내 마음도 푸르렀다. 인생의 청년기처럼 5월은 자연이 약동하는 힘찬 계절임이

분명했다.

 

 

 

산길 바로 밑 20m지점에 샘터가 있었다. 편안한 산길이었지만 날씨가

후덥지근하여 식수를 보충할 필요성이 있었다. 샘터로 내려섰다. ▼

 

 

 

조그만 샘이었다. 샘물 속으로  푸른 숲이 보였다. 샘물이 푸른 숲을 가두었는지

푸른 숲이 샘물 속으로 들어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샘터에는 그 흔한 표주박

하나 없었다. 귀찮았지만 베낭 속에서 컵을 꺼내서 샘물을 마셨다.

그리고 식수도 보충했다.▼

 

 

 

한 참을  오르니 푸른 초원의 능선이 나타났다. 가슴이 확 트이는 듯 싶었다.

바로 등뒤에 보이는 산이 백두대간 마루금 상에 있는 백운산이다. ▼

 

 

 

어머님의 품처럼 편안한 산길을 걸어나갔다. 정말이지 마음 편한 산길이었다.

우리나라의 무수한 산 중에서 이렇게 편안한 산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았다.

백대 명산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장안산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곳에 또 다시 목재테크가 설치돼 있었다. ▼

 

 

 

드디어 장안산 정상에 올랐다.  날머리인 밀목재까지는 9.3km를 더 걸어야 한다.▼

 

 

 

해발 1237m의 장안산은 장수, 번암, 계남, 장계 등 4개면의 중앙에

위치하고 백두대간이 뻗어 전국의 8대 종산 중 제일 광활한 위치를

차지한 금남호남정맥의 기봉인 명실상부한 호남의 종산이라고 한다.▼ 

 

 

 

백두대간과 영취산, 그리고 장안산을 설명하는 안내판이다.▼  

 

 

 

장안산 정상 바로 밑에서 요기를 하고 밀목재로 향하였다.▼

 

 

 

좀 이색적이다 싶은 곳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 탓에 또 다시 멈춰섰다.▼

 

 

 

밀목재는 앞으로도 7.3km를 더 진행해야 한다.▼

 

 

 

산길을 지나다가 백두대간 마루금을 스치게 되었다. 반가웠다. 그러나

어디로 부터 와서 어디로 연결되는지 분명치가 않아 안타까웠다. ▼

 

 

 

해발 948m의 백운산 정상이었다. 변변한 정상석 하나 없는 백운산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그나마 비닐에 둘러 싸인 "백운산"이라고 쓰인

종이가 나무에 메달려 있었기에 조금은 위안이 될 수 있었다.▼

 

 

 

 백운산이라는 동명이산은 전국적으로 약 30 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하긴 이곳

장수에만 해도 두개의 백운산이 있다. 지금 이곳의 백운산 이외에 이곳에서 불과

수 km의 거리에 있는 백두대간 상의 백운산이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내가 올라 본 백운산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보기로 하자, 우선 의왕의

백운산, 포천의 백운산, 정선의 백운산, 그리고 광양의 원조 백운산이 있고 영남

알프스 상의 백운산이 있다. 이곳 장수에 있는 두개의 백운산까지 합하면 총 7개의

백운산을 오른 셈이다. ▼

 

 

 

밀목재는 아직도 4.7km를 더 걸어야 한다.▼

 

 

 

 

 

산행 시작 5시간 여만에 드디어 밀목재로 내려섰다. 산길은 대체적으로

편안했지만 날씨가 무더워서 온 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

 

 

 

금남 호남 정맥에 관한 안내판이다. 마음 같아서는 정맥도 꼭 해보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그럼 언제? 다릿힘이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단단히 살아있을까? ▼

 

 

 

밀목재로 내려서서 전원주택처럼 평화로운 마을로 들어섰다. ▼

 

 

 

 욕심 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어느 집을 둘러봤다. 얘길 들어보니 어느 퇴직 공직자가

마련한 집이라고 한다. 불과 몇 년 후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도 저렇게

단출하게 낙향할 수 있을까? 나도 저렇게 형형색색의 꽃들에 둘러싸인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 지금 입장에서는 부러움 반, 두려움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