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2010. 6. 6. 17:34

 

 

산행 일시 : 2010.6.5(토)

산  행  지 :  육백산, 응봉산(강원 삼척 소재)

산행 코스 : 강원대 제2켐퍼스~육백산~응봉산~1120봉~이끼폭포~소재말

산행 시간 : 약 6시간

안내 산악회 : 경기우리 산악회

 

 

삼척에 위치하고 있는 강원대학교 제2캠퍼스이다. 오늘 산행 들머리는 특이하게도

버스가 캠퍼스  안으로 진입하여 시작된다. ▼

 

 

산행은 강원대학교 후문 방향에서 시작되었다. 워낙 이동거리가 멀고 도로사정이 좋지않아

평소보다 30분 빨리 나섰지만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30분경이었다.

 

 

산길에 접어들었다. 폭염이 쏟아지는 무더운 날씨였다. 오늘 산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해 주는 듯 했다. 하지만, 숲속에서 풍겨나오는 산내음, 풀내음이 코를 진동시키고 있어

기분 상쾌했다.

 

마른 낙엽들을 힘겹게 밀어내고 비로소 맞이한 눈 부신 야생화가 곳곳에 피어나고 있었다.

길가에는 전지작업으로 인해 우람한 나무들이 드러누워 있어 산길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었다. 왜 하필 산길위로 나무들을 쓰러뜨렸는지 산림당국의 산객들을 위한 배려가

아쉬웠다.

 

육백산으로 향하는 임도에는 육백산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어서 무더운 산행의

지루함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었다.▼

 

 

갈림길이었다. 이곳에서 육백산은 300m거리에 있었다. 우린 일단 육백산으로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와야 한다. 응봉산으로 향하기 위해서이다. 육백산은 임도가 잘

발달되어 있고 시야가 트여 길을 잃을 염려는 없는 산이었다. 어느때 찾아도 등반인을

즐겁게 하는 육백마지기 너른 가슴을 지닌 산다운 곳이 바로 육백산이었다.

 

 

해발 1244m의 육백산 정상이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노곡면에 위치한 육백산과 응봉산은

낙동정맥의 분수령인 백병산에서 태백~호산간 도로인 416번 지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

8km쯤에 우똑 솟아있는 전형적인 육산이다. ▼

 

 

육백산 정상에 서면, 푸른 동해를 굽어볼 수 있다고 하지만 오늘은 무성한 나무 숲으로 가려져

안타깝게도 바다를 볼 수가 없었다. 다만, 해발 1000 미터가 넘는 고봉 10여개가 이 산을

호위하고 있어 육백산의 위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또한 육백산은 산세가 매우 펑퍼짐하므로 겨울산행지로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육백산의

산 이름은 고스락의 평평한 넓이가 육백마지기나 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서속(黍粟, 기장과 조) 씨를 육백섬이나 심을 정도로 넓다는 데서 생겨났다고도 한다. 

 

 

육백산에서 비교적 평평한 임도를 따라 30여분쯤 걸었을까? 응봉산 갈림길이 나타났다.

모두들 그냥 지나쳤지만 산 욕심이 많은 나는 함께 한 친구를 꼬득여 응봉산을 다녀가기로

하였다.

 

임도가 끝나고 응봉산으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산전체가 육산인지라 평소 같으면

별 문제 없는 오르막길이었지만 오늘따라 폭염이 내리쏟고 있었기에 그만큼 힘이 들었다.

 

드디어 해발 1267m의 응봉산에 올랐다. 응봉산 역시 육백산과 마찬가지로 주변이 숲이

우거져 있었기에 조망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다시 육백지맥으로 돌아와 응봉산을 지나친 일행들과 금새 합류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들은 알바를 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무더운 날씨에 알바를 한 그분들껜 안된

얘기지만 내겐 아주 잘된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분들이 열심히 알바를 하는 시간에 우린 응봉산을 덤으로 다녀온

셈이다.  사진은 육백지맥상에 있는 해발 1120봉이다. ▼

 

 

지금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들이 다 문을 닫고 말았지만 육백산은 석탄산업이

성하기 전에는 화전민들이 화전을 일궈 농사를 짓던 산이다. 지금도 화전민들이 생활하던

그때의 "너와 집"이 육백리 남쪽 신리문이골에 생활용구와 함께 잘 보존돼 중요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사진은 육백산 기슭의 화전민촌이다. ▼

 

 

참으로 지루한 산길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길이었다. 비 오듯 땀이 주룩 주룩 흘러내렸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의 산이라서 그런지 하산하는 길은 더더욱 까다로운 길이었다.

지나 온 산길을 되돌아 보았다. 연두빛이 어느새 연초록으로, 다시 무성한 숲은 검푸른 색깔로 변해만

가고 있었다. 자연의 조화는 참으로 오묘했다. ▼

 

 

 땀으로 목욕을 하고 힘들게 힘들게 이끼폭포에 이르렀다. 이끼폭포는 어쩌면 오늘 산행에 있어서

최대 하일라이트가 아닌가 싶다. ▼

 

 

이끼폭포는 태고의 신비가 숨겨진 비경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시원스러웠다.

지금까지 고생 고생하며 힘들게 걸어 온 산길에 대한 보상을 한꺼번에 받는듯 했다.

그래, 바로 이 기분이야~! 이것이 바로 내가 그토록  집요하게 산을 찾는 이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끼폭포는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자연의 신비를 고마운 마음으로 얌전히 느끼기만 한다면 별 문제 없을 터이지만

극성맞은 사람들이 이곳 저곳 이끼들을 짖밟고 다니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끼폭포에서 곧바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길이  통제되면서 계곡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우린 다시

내려왔던 길을 올라서서 도로를 타고 하산해야 했었다.

 

 

화전민이 살았던 집이다. 집 주인은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했다. 집 주변의 모습을 보니 비운 지가 그리 멀어보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 

 

 

역시 화전민이 살았던 오두막집이다. 앞의 집 보다 훨씬 더 작고 빈약해 보였다.

혹여 우리의 법정스님께서 기거하셨던 곳은 아닐까? 초라한 집을 바라보면서

속세를 잠시 떠나 자연의 곱고도 맑은 숨결을 느끼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지루한 임도와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었다. 하늘에서는 용광로같은 태양열이

무섭게 내리쬐고 있었고 땅에서는 고온의 지열이 심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 뒤에 알아보니 삼척지방의 수은주가 섭씨 34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가히 살인적인 더위였다. 갑작스레 다가 온 무더위였기에 더욱 힘들었다. 1시간 30분은

걸었던 모양이다. 탄광의 갱앞에서 발길을 멈춰섰다. 나도 모르게 갱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갱안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강도의 에어콘 바람처럼 시원했다. ▼ 

 

 

 갱 입구에는 탄광작업을 할때 사용했던 장비들이 무질서하게 널려있었다.

한때는 눈부신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었던 석탄 산업...그러나, 지금은

석탄산업의 합리화 정책때문에 사양길로 접어든지 오래다.

 

그때 그 분들이 질긴 목숨을 이어가기 위하여 힘든 일을 할때 사용했던 장비들은

지금 주인을 잃고 방치돼 있었지만, 문득 갱도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광부들의 애환이

닮긴 삶의 현장과 생생한 갱도 속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

 

 

 

하산길 옆으로 계곡은 있었지만 시원한 계곡수 대신, 돌가루로 범벅된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생각같아서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알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지저분한 물을 보는

순간 그럴 마음이 일순 사라지고 말았다.

 

드디어 날머리인 소재말에 이르렀다.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된 우리의 절박한 처지를

이해하는 듯 마을 주민들은 어느 집이고 수돗물 사용을 쾌히 허락해 주셨다.

강원도 인심이 이렇게 좋다는 것을 이제사 확인할 수 있었다. ▼

 

 

강원도의 상징은 단연 감자로 대표된다. 강원도 감자밭에서는 풋풋하게 감자가 무르익고 있었다. ▼

 

 

연탄, 아직 탄광에 대한 미련을 못버려서일까? 탄광촌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연탄이 연탄창고에 가득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