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세계/문인으로서의 나

한국문학신문에 게재된 수필...

*산울림* 2010. 4. 18. 15:03

 

 

한국문학신문은 우리 문단에서는 유일무이한 최초의 문학신문이다. ▼

 

 

수필 "저수지 이야기"

 

저수지 이야기

 

하루하루 일상의 고달픈 일에 파묻혀 허둥대며 살아가는 와중에도

간간이 낯익은 고향의 정경(情景)을 떠올리는 순간은 하루 중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명절 때나, 한식날이나 돼야 찾아 나서는 한적한 고향,

자치기, 연날리기, 땅따먹기, 술래잡기 등 유년 적 추억은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지금 다시 재연(再演)하기엔 어느 새, 희끗희끗 들어버린

나이가 밉기만 합니다.


논과 밭, 들과 내(川), 산과 저수지.

어느 것 하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만의 낙원이었습니다.

오늘은 그중 저수지에 관한 음산한 추억의 얘기 한 토막을 꺼내볼까

합니다.


내 고향 모퉁이엔 산과 산이 병풍처럼 이어져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배고픔의 대물림을 극복하는 것이 소원이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풍족한 물이 끊임없이 출렁이는 저수지가 꼭 필요했을

것입니다.


하늘만 쳐다보고 비가 내려주길 기다리는 고질적인 천수답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고

어려웠던 사람들은 정부양곡을 받는 대가로 많은 노동력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드디어 산과 산 사이에 둑이 막아지면서 하나의 저수지가 완성되었

습니다. 이렇게 해서 축조된 저수지는 척박한 천수답을 옥토로 바꿔놓고

말았으며 덕분에 사람들의 삶도 제법 풍요로워졌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이들에게도 맘껏 뛰놀 수 있는 둑과 훌륭한 물놀이

터가 새로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만 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저수지에서는 실로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병마에 시달려온 집안의 아주머니뻘 되시는

분이 식구들에 대한 죄스러움과 육신을 파고드는 고통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이곳 저수지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 삶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어른들의 말씀처럼 억울하게 먼저 죽은 이의 원혼이 누군가를 초대했던

일까요? 

그 뒤, 이곳 저수지에서는 가끔씩 귀중한 생명들이 맥없이 죽어갔습니다.

환한 저승길의 꽃빛깔 앞에서는 누구나 정갈해지는 것인지 그들은 한결

같이 하얀 고무신을 곱게 벗어두고 삶을 마감했습니다.


한 동안 뜸한 듯싶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계속됐습니다.

얼마 전에는 또다시 저와 동갑네기인 한 친구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

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아, 이승에서의 서러운 이유는 다 어디

론가 속속들이 잊고 그처럼 쉽게 삶을 마감했을까? 그 저수지의 비밀이

궁금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