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2010. 3. 17. 11:45

 

 

흔히들 여행은 과거를 되돌아보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기 위해 여행길에 나서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여행길에

오르면 산을 만나고 물을 만나고 바람을 만난다. 길을 나서면 또한 다른 사람들이 보지못한 풍경을

만나려 하고 다른 이들이 느끼지 못한 향기를 맡으려 한다.

 

이런 연유로 해서 여행길에 오르면 누구나 가슴이 설레이는 것이다. 그렇다. 금년들어 두번째 맞이

하는 소위 의무연가는 이러한 설레임을 가득 안고 멀리 봄맞이 채비에 바쁠 섬진강변의 들녘과

매화꽃의 향연을 마음껏 느끼고자 광양의 백운산으로 떠나게 되었다. 백운산은 같은 이름을 지닌

산이 우리 남한땅에만 10여개에 이른다.

 

10 여개의 백운산 중 내가 다녀 온 백운산은 모두 6개산에 이른다. 첫째는 강원도 정선에 있는 두개의

백운산과 우리집 근처에 있는 의왕의 백운산, 그리고 한북정맥의 산군에 포함돼 있는 포천의 백운산,

백두대간의 마루금상에 있는 장수의 백운산, 또 영남알프스의 가지산과 운문산 사이에 있는 백운산이

그것이다. 따라서 오늘 광양의 백운산까지 포함하면 7개의 백운산에 오른 셈인 것이다.

 

특히 여러 백운산 중 단연 으뜸인 백운산은 말할 것도 없이 이곳 광양의 백운산이다. 다시 말해 이곳의

백운산은 그야말로 원조 백운산인 것이다.

 

 

산행 일시 : 2010. 3. 16(화)

산행 코스 : 진틀~신선대~백운산~매봉~천왕재~관동마을

산행 시간 : 약 5시간

안내 산악회 : 경기우리 산악회

 

 

백운산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아득했다. 무려 4시간을 달려왔는데도 백운산은 아직이다. 비교적 한적한

곡성휴게소에 들러 산행 채비도 하고 용변도 보았다. ▼

 

 

평일이라서 교통의 흐름은 좋았지만 워낙 장거리인지라 우리를 실은 산악회 차량은 정오가 돼서야 산행들머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이 너무 늦은 관계로 오늘 산행은 백운산 코스를 정확히 5시간 이내에 돌파할 수 있는 준족을

지닌 사람들만 가기로 하고 다른 분들은 B 코스인 쫓비산~갈미봉 코스를 선택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나를

포함하여 절반의 인원만 백운산을 오르게 되었다. 사진은 들머리인 진틀입구이다. ▼

 

 

들머리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정확히 4.0km였다. ▼

 

 

산행 출발시각은 12시 15분, 가파르게 이어진 콘크리트 농로를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아마 당일 산행 중에서

이렇게 늦게 출발한 산행도 없었으리라. 다섯시간여의 산행시간과 귀경시간을 고려하면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정상은 이제 3.6km를 남겨두고 있었다. ▼

 

 

봄은 말할 것도 없이 남녘으로 부터 올라온다. 이른 봄 남도 특유의 부드러운 햇살과 산들거리는 바람결과 청청한

계곡수 등이 남도의 정서를 잘 빚어내고 있는 듯 싶었다. ▼

 

 

백운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너덜지대가 많았다. 따라서 발을 헛딛기라도 하면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여느 산에서 볼 수 없었던 구급함이 친절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물론 내용물들도 잘 정돈돼

있었다. ▼

 

 

백운산엔 고로쇠가 유명하다. 전국 여러 곳의 고로쇠 중 이곳의 고로쇠가 가장 효험이 있고 유명하다고 한다.

고로쇠는 통일신라시대말 불교중흥을 일으켰던 도선국사가 백운산에서 좌선을 하고 일어나려는 순간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힘겹게 곁에 있던 가지를 붙들고 일어서려다 가지가 찢어지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때 찢어진 나뭇가지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로 목을 축이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무릎이 펴지고 몸도 좋아

졌다고 한다. 그후, 도선국사가 이 나무의 이름을 뼈에 이롭다는 의미로 골리수 (骨利樹)로 부르게 되었고

그 후에 골리수가 고로쇠나무로 변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진틀 삼거리였다. 우린 신선대 방향으로 올라야

한다. ▼

 

 

신선대로 오르는 산길은 계속해서 급경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산행 초입부터 불던 바람은 신선대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 세차게 불어닥치고 있었다. 땀이 나다가도 이내 바람에 씻겨가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만나는 곳이라기에 옷차림도 가볍게 했던터라 온 몸에 추위가 느껴졌다. 드디어 신선대에 이르렀다.

말이 신선대지 정상석도 없었고 해발 높이표시도 없었고 달랑 길라잡이만 설치돼 있었다.▼

 

 

신선대의 육중한 바위의 모습이다. ▼

 

 

얼마 전 내린 눈발은 모두 녹아내렸고 응달진 산등성이에서만 이따금씩 히끗히끗한 눈의 흔적이 보였고, 훤칠한

높이를 지닌 참나무들 사이로 백운산의 정상이 보였다. ▼

 

 

드디어 백운산 정상이었다. 해발 1,218m의 백운산은 전남에서 지리산 노고단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신선대에서

부터 세차게 불어닥쳤던 바람은 이곳 백운산 정상에 이르러서는 광풍으로 바뀌고 말았다. 위험했다. 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모두들 바위틈에 숨어 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

 

 

모두들 정상석만 어렵게 촬영하고 하산하기에 바빴다. 어서 무서운 바람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간신히

정상에 오른 나는 온몸으로 정상석을 부등켜 안고 기념촬영을 하였다. 저 사진을 남기기 위해 그야말로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던 것이다. 물론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몇 년전 백록담의 악몽이

재현되는 듯 싶었다. ▼

 

 

정상을 피해서도 바람은 계속해서 불어닥치고 있었다. 온 몸이 한기가 돋았고 손도 몹시 시렸다.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

산길을 달렸다. 겸허한 마음으로 산길을 걷겠다는 당초의 각오도 오늘만큼은 예외이고 싶었다. ▼

 

 

다행히 산길에 눈이 없었고 얼지도 않았기에 모처럼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았고 그러기에 산행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해발 865m의 매봉에 이르렀다. ▼

 

 

 

 갈림길이었다. 우린 쫓비산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름도 희안한 게밭골 갈림길이었다. 날머리인 관동마을로 하산하여야 하지만 지척에 있는 갈미봉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다른 분들은 힘들다고 그냥 하산하였지만 나는 일행인 선배님을 꼬드겨서 갈미봉으로 향했다.▼

 

 

해발 530m의 갈미봉이다.

 

 

갈미봉의 또 다른 표지판이다.

 

 

 

 

 참으로 친절한 구급안내이다.

 

 

아~! 섬진강, 우리나라 강 중에서 가장 깨끗한 강이 섬진강이라고 한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

자락의  데미샘에서 발원해 전남 북과 경남의 고장들을 두루 거치면서 남으로 굽이치는 섬진강은 수려한

주변경관까지 품고있다 그래서 사계절에 걸쳐 어느 곳을 찾더라도 인상적인 곳이 섬진강변이라고 한다.

 

 

매화꽃의 향연이 한창일 관동마을 가는 길로 내려섰다.

 

 

매화의 꽃망울이 여기저기에서 툭툭!  봄을 터트리고 있었다. 정녕 매화꽃이 피어나는 것을 시샘하는 것이었을까?

오늘따라 꽃샘추위가 겨울추위 이상으로 매섭기만 하였다. ▼

 

 

꽃샘추위 덕에 이미 만개한 매화꽃도, 부풀어 오른 꽃봉오리도, 그리고 나의 몸까지도 움츠려들고 있었다.

 

 

매화꽃은 하얀 꽃만은 아니었다. 저토록 황홀찬란한 홍매화도 있었다.

 

 

섬진강변과 백운산 자락에는 봄에는 매화의 향연이 한창이다. 봄기운을 한껏 머금은 섬진강변과 산아래로부터  

만개한 하얀 꽃잎으로 산자락을 휘감은 매화꽃 무리를 보노라면 마치 구름위에 떠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

 

 

하얗게 피어 난 매화꽃, 풍부하면서도 청아한 계곡수...이 모든것이 힘든 산행 뒤에 맛보게 되는 즐거움이었다.

 

 

무슨 이유일까? 조그만 연못 한 가운데 육중한 바위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글씨도 없고 물어 볼 사람도 없고..

아무리 봐도 무슨 연유인지를 몰랐다. 필시 무슨 사연이 있었으리라.

 

 

광양시 다압면 고사리 관동마을에 내려섰다. 매화와 섬진강의 마을,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한다.

500리 섬진강 물줄기, 봄이면 섬진강 줄기 따라 매화꽃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사시사철 계절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하나의 자연으로 존재하는 섬진강..그래서 섬진강은 많은 문인들의  문학적 자양분이 됐을 것이 분명하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엔 광양군 다압면 섬진 윗마을이 있다. 이 마을 매화농원을 바라보며 유난히 매화꽃을

좋아하신 법정스님께선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매화동산 한쪽 기슭에 한 칸 초막을 빌려, 매화철이

되면 섬진강을 내려다보면서 매화 향기 속에서 유유히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시던 스님께서 지금은 .....▼

 

 

경상도와 전라도를 아우르는 섬진강 물줄기, 이쪽은 전라도 땅이고 강 건너 사진으로 보이는 쪽이 경상도 땅이다.

 

 

매화축제는 이미 열리고 있었으나 매화가 만개하기 까지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었다.

 

 

하산하여 일단 요기를 하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름다운 산군들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혹시 지리산이 아닌가 했더니 역시 지리산이었다. 갑자기 그리움이 밀려왔다. 지리산은 사람들을

단근질하고 진한 향에 취하게 만드는 우리 민족의 명산이기에 흔히들 "어머니의 산"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지리산은 넉넉한 가슴으로 우리를 안겨주고 있으니 늘 그리운 산이고 늘 가고 또 가고싶은 산이었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넉넉한 품속같은 지리산을 보게되니 문득 집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지금 모시고 있으면서도 항상 그리운 존재다. 그것은 필시 말로만 모시고 있을 뿐, 평일에는 이 핑계,

저 핑계 둘러대면서 주무실때나 귀가하고 오늘처럼 쉬는 날에는 훌쩍 산으로 떠나오니 그 동안 온전하게

말벗 한번 제대로 못해 드렸던 것이다. 지척에 있는 지리산을 보면서 문득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