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령~화주봉~밀목재~삼마골~물한계곡
이제 백두대간 마루금 걷기도 서서히 그 종착점에 이르고 있다. 오늘 산행구간을 빼면 이달에 두 구간
(지난 1월 폭설로 중도하차한 마구령~늦은목이 구간 포함), 4월초에 한 구간이 계획돼 있고, 겨울철
눈과 결빙으로 인한 안전사고 때문에 아직 시도하지 못한 마지막 설악산의 두 구간이 5월로 예정되어
있어 이 구간들을 모두 포함하면 총 5개 구간이 남은 셈이다.
돌이켜 보면, 짧은 시간에 참으로 많은 마루금을 걸어왔다. 작년 2월에 백두대간 마루금 걷기에 처음
동참하여 불과 1년 여 만에 그 대장정을 종주하게 됐으니 말이다.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간을
종주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 자신의 건강관리도 문제였으며 친척과 주변 지인들의
대.소사도 늘 문제의 중심에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나를 대신해서 여러가지 가정적인 어려움을 극복
하고 대간 종주에 기꺼이 마음을 보태 준 집사람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자 한다.
이렇듯 지금까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쭉 진행해 오던 대간 길이 종착점에 이르러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경험칙에 의하면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은 처음 시작할 단계와 마지막 마무리 단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만이 비로소 그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일까? 그렇잖아도 평생
친구처럼 동행하며 살아가는 무좀이라는 지독한 놈이 그 동안 나를 여간 성가시게 굴어온 것이 아니였
는데 이번에는 무좀이 아닌 "티눈"이라는 의외의 복병이 발바닥에 깊숙이 파고 들어와 귀찮게 구는
것이었다.
하긴 딱히 티눈만 흉볼 일은 아니었다. 허구한 날, 그렇게나 발바닥이 갈라지고 달아 질 정도로
산길을 걸었으니 티눈인들 박히지 않을 재주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틈틈히 티눈 치료를 받아오긴
하였지만 오늘도 발바닥의 컨디션이 정상은 아닌 상태에서 마루금 걷기에 나서게 되었다.
산행 일시 : 2010. 3. 6(토)
산행 코스 : 우두령~화주봉~밀목재~삼마골~물한계곡
산행 시간 : 약 5시간
안내 산악회 : 경기우리 산악회
오늘 대간 들머리인 우두령(牛頭嶺,790m)으로 왔다. 날씨가 무척 쌀쌀하게 느껴졌다. 요 며칠 동안
포근했던 날씨에 적응됐기 때문이리라. ▼
소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백두대간 우두령'이라는 표지석과 함께 크게 세워져 있다. 중부지방 산림청
보은 국유림관리소에서 2006년 10월 20일에 세운 것이다. ▼
표지석의 뒷면에는 백두대간과 우두령에 대한 간단한 소개 글이 써 있었다. "우두령은 우등령(소의 등)이
구전되어 변했다고 전하며 절매재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
또한, 표지석의 뒷면에 이어지는 내용은
"산은 우리의 삶의 터전이고 바탕이며, 생명의 원천으로 백두대간을 영원히 보존하고 아끼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백두대간 표지석을 세운다." 라고 적혀 있었다.
콘크리트 벽에 갇혀 산을 잃어버리고 사는 많은 도시민들에게 산은 정말 삶의 터전이고 바탕일까. 그들은 과연
산을 생명의 원천이라고 느끼고 있을까. 진정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명쯤이나 될까. ▼
우두령은 충북영동군 상촌면과 경북 김천시 구성면을 잇는 90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다 그러듯이 오늘 역시 초입부터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야 했다. 땀을 흠뻑 내기에 추위를
별로 못느꼈지만 상당히 추운 날씨였다. 산길에는 비가 내린 후에 다시 눈까지 내려 땅이 몹시 질고 미끄러웠다.
따라서 등산화는 완전 흙투성이가 됐고 산행속도도 그만큼 더딜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오늘 산행도 산행
컨디션이 최악의 상황이었다. 산행시작 한 시간여 만에 해발 1,207m의 석교산(화주봉)에 올랐다. ▼
어젯밤에 배낭을 꾸리면서 두툼한 겨울 장갑 대신. 손가락이 반쯤 나오는 암벽용 장갑을 지참하고 나왔다.
물론 막내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산행이 너무 더웠기에 당연히 손난로도 지참하지 않았다. 손이 몹시 시려웠다.
손가락이 깨질 것 같이 시렸다. 또 한번 내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내이에게 무척 미안했다.
석교산을 지나고 밀목재를 향하여 열심히 길을 헤치며 나아갔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운무 짙게 깔려 불과
몇 미터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시계거리가 짧기에 주위력은 떨어졌고 그 틈을 타서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곤 하였다. 특히 키 높이로 자란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딱~!'하며 때릴 때는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 ▼
날씨는 춥고 산길은 질퍽거리고 미끄러웠지만 능선은 그런대로 굴곡없이 편안했다. 계속해서 편안한 능선길을
기대했었지만 느닷없이 암봉이 나타났고 그 암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로프에 의지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조심
스럽게 올라야 했다. 비에 젖고 눈에 쌓인 로프를 거의 맨살 상태로 잡으니 손이 깨질 듯이 시려왔다. 막내이도
더는 참기가 어려웠던지 짜증을 내며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렵게 암봉에 올라 힘들어 하는 막내이를 다독거려 주었다. "산 길은 인생 길과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하면
지금 힘들게 오른 암봉의 의미를 스스로 잘 터득하게 된다고....▼
오늘 산길은 날씨 외에도 대간 길이라면 너무도 당연히 있어야 할 그 흔한 길라잡이 하나 보이질 않아
너무 답답하고 지루했었다. 밀목령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길라잡이가 나타났다. 반가웠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반가웠다. 더구나 우리가 진행해야 할 방향인 삼도봉이 불과 2.86km라고 하니 이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밀목령은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의 가래점마을과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의 대야동 마을 간을
왕래하던 옛 고갯길로서 백두대간의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지만 지금은 희미한 고갯길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백두대간 고개 중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최남단 고개인 밀목재, 그 길라잡이의 받침목은 유난히 길기만 하였다.
사진촬영을 두단계로 구분해서 촬영할 정도로 말이다. 밀목재에서도 날씨는 여전히 흐렸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지겨운 눈, 짜증만 나는 눈, 내게 있어서 눈 세상은 이제 더 이상 아름다움과 황홀의 대명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눈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
"빈익빈 부익부"였을까? 삼도봉이 가까워 오니 이정표는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우두령과 밀목재 사이에도
단 몇개의 길라잡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
드디어 삼마골재에 이르렀다. 반가웠다. 꼭 2 주전에 지나갔던 고개였다. 우린 황룡사 방향으로 내려만 가면
된다. ▼
부항 해인리, 이곳은 경상도 지방에서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한다. 한 번 들러보고 싶었다. ▼
물한계곡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잘 단장된 목재테크 위로 내려오는 막내이의 모습이다. ▼
음주암 폭포로 가는 길이다.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시간이 충분하여 한 번 다녀오고 싶었다.▼
그런데 폭포로 가는 길은 두절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전에 지나 친 곳이 음주암 폭포인듯 싶었다.
다시 갈 수는 없고 해서 그 폭포의 물 줄기만 남기기로 했다.▼
황룡사 입구이다. ▼
물한계곡 표지석이다. 벌써 이곳을 몇 차례나 왔던가? ▼
민주지산 대장군과 물한계곡 여장군 모습의 장승이다. ▼
오늘은 백두대간의 무사 완주를 기원하는 시산제 행사를 갖었다. 행사는 조촐하였지만 진지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