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오색)~대청봉~중청~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
오늘은 백두대간 산행구간 중 설악산 구간이다. 오늘 산행은 "년내 백두대간 종주"라는
대간 제1기 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약간은 변칙적을 편성된 스케줄에 따라 이뤄진
산행이었다. 따라서 몇 개 구간을 뛰어 넘어 이 구간을 긴급 편성하여 실행하게 된 것이다.
모든 산악인들이 그렇겠지만 내게 있어서 설악산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 산이다. 이 산을
통하여 많은 지인들과 친교를 갖을 수 있었고 지금도 그때의 인연으로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
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이런 의미를 지닌 설악산이기에 나는 1년이면 최소한 서너 차례씩
설악산에 오른다.
산악카페에 설악산 산행이 공지된 날로부터 나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약 1주일
전부터 설악산의 일기예보를 살펴봤다. 토요일은 비가 오고 일요일 아침 9시부터는 게인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비오는 날의 산행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만큼 예민할 수밖에 없
었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였던가? 은근히 일기예보가 오보이기를 바라고 또 바랬었지만 나의
기대는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칩칩한 생각이 들었지만 하늘의 조화인 것을 어쩔 것
인가, 토요일 하루 종일 비가 내렸었고 버스가 안양을 출발할 때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새벽 2시 30분 경에 한계령에 도착하여 한계령에서 출발하는 팀과 오색에서 출발하는
팀을 구별하였다. 시간상으로는 한계령 출발팀이 오색팀보다 약 1시간 30분 가량이 더 소
요된다. 비도 오고 있고 컨디션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으며 더구나 한계령 코스는 작년만
해도 세차례나 통과하였기에 나는 오색에서 출발하는 팀에 동참하기로 하고 오색으로 향
하였다.
오색에서 간단히 산행복장을 갖추고 약 3시 50분 경에 대청봉을 향하여 산을 오르기 시작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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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들머리인 오색초소이다. 오랜만에 이곳을 통과하면서 실로 많은 생각들이 마음에서
교차했다. 그 동안 수 차례 이 길을 통과했지만 그때마다 느낌은 각각 다를 수밖에 없
었다. 저마다 달랐던 숲 냄새, 새소리,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 흐르는 구름까지도 달랐다.
빗줄기 속을 뚫고 통과하는 오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
대청봉(大靑峰, 1707.9m)을 향했다.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 해서 예전에는 그저 청봉이
라고 불리기도 했었고, 봉정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한라산과 지리산에
이어 세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기상 변화가 심하고 강한 바람과 낮은 온도 때문에 눈잣
나무 군락이 융단처럼 낮게 자라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한 줄기 강한 바람이라도 불어부면 좋으련만 비만 내렸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때문에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레인코트를 입은 나는 온 몸이 비에 젖고 무수히 흐르는 땀에
젖고 말았다. 대청봉 바로 밑에 있는 길라잡이다. 오색에서 이곳까지 오면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저 어둠 뿐이었고 그저 자연이 내뿜는 소리 뿐이었다. ▼
드디어 설악산의 최고봉, 해발1709 미터의 대청봉에 올랐다. 설악산은 "신성하고 숭고한 산"
이라는 뜻에서 예로부터 설산, 설봉산, 설화산 등으로 불렸고, 서리뫼라고 불렸다고 한다. 백두
대간의 중심부에 있어 북쪽으로는 향로봉, 금강산과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점봉산, 오대산과 마
주하고 있다.
또한, 설악산은 1970년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1982년 8월 유네
스코의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온대 중부지방의 대표적 원시림 지역으로 다양한 동식
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명산 중의 명산이다.
대청봉에 올라서면 늘 느끼는 바이지만 수 많은 인파로 사진찍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오늘은
먼저 도착한 산우께서 고맙게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촬영해 주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희운각 대피소 바로 직전에 새로 설치한 다리 위를 거닐었다. ▼
오색에서 대청까지는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예전에 이곳에 오를때는 전날 술을 많이
마셨던 탓인지 3시간이 넘은 듯싶다. 대청에서 중청으로 내려가는 길은 빗줄기를 동반한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어 추위가 느껴졌다.
중청산장에서 한계령에서 출발한 팀과 합류하여 소청을 거쳐 희운각으로 향했다. 희운각
으로 향하는 길 역시 빗길이었지만 등반로가 잘 다듬어져 있어 크게 위험스럽지는 않았다.
희운각 대피소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라면 등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아침을 마치고 옷 매무새 여미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물 나눌 고개'라는
의미를 지닌 무너미고개(1060m)를 넘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 자연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지나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고개였다.
이 고개로 떨어지는 빗물은 동해와 서해로 운명이 갈린다. 산줄기는 이렇게 내리는 빗줄기를 품어
큰 강물로 흐르게 한다. 수 많은 생명들이 그 강줄기에 기대어 살아가라고 말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공룡능선을 타기 위해 마등령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드디어 공룡능선에 접어들었다. 마등령과 신선대를 잇고 외설악과 남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능선으로 기이한 암봉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장엄하며, 요철이 심한 것이
마치 공룡의 등과 같다 하여 공룡능선이라 하였다. 모진 풍파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한 나무가
처연하다.▼
공룡능선(恐龍稜線)을 따라 걸었다. 이 능선의 끝에 마등령(馬等嶺, 1320m)이 있었다.
능선을 따라 가는 길마다 산줄기 첩첩하고 거대한 암봉들이 솟아나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이토록 험한 바윗길을 거닐면서 내가 내게 물었다. 왜 이 산행을 시작했는지,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산행을 한 보람이 있었는지 이제 이 산행이 끝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알 수 있는
것,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참으로 원초적인 질문들이었다. ▼
오늘 산행은 나홀로 산행이나 다름없었다. 워낙 산행구간이 다양하고 때마침 오늘이 설악산 국립공원의
산불 통제기간이 종료되고 처음으로 개방하는 날이라서 수 많은 등산객들에게 가려져 일행과 함께 산
행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거의 전 구간을 혼자 생각하면 걸었다. 놓치기 아까운 장면 앞에서는 지나
가는 길손을 붙잡아 사진촬영을 부탁했다.▼
이곳이 어디쯤일까? 나한봉? 범봉?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우람스런 바위산의 멋진
비경앞에서도 나는 이곳이 어딘지 몰라 전전긍긍해야먄 했었다. 새워져 있는 길라잡이의
버팀목 중간에 간단히 이곳의 위치를 기재해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능선을
통과하는 시간 내내 나의 뇌리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국립공원측의 무성의를 질타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아! 공룡능선. 거대한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장쾌함과 힘차게 뻗은 산줄기들이 만들어 내는
장대함이 어울려 자아내는 산은 장엄함에 머물지 않고 아름답고 화려했다. 나는 늘어선
거대한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갔다. ▼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암릉을 오르내리며 몸을 부대끼면서 마등령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부터 사람들의 소리와 냄새에 화들짝 놀란 산짐승들이 도망가듯 사라져 갔으며 그리 멀지 않
은 곳에서는 산새들의 울음소리도 거칠게 들려왔다.
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른 새벽부터 산 새나, 산 짐승들의 영역을 무단으로 침범하여
포근하게 쉬고 있을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으니 어찌 미안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말이다
. 이 순간만큼은 이땅의 산악인들을 대표하여 산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정중히 미안한 마음을 전
하고싶다.
해발 1260미터의 마등령이다.▼
마등령 길라잡이다. 앞으로 가야 할 비선대까지는 3.7킬로미터이고 백두대간의 미시령으로
향하는 오세암은 1.4km이다. 오세암은 다섯살 아기가 부처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암자
이다.▼
비선대로 향하는 조그만 산봉우리에 오르니 해발 1320미터의 마등령 정상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마등령은 말의 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이 너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서 올라야 오를 수 있단" 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 고개가 얼마나
험준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마등령을 지나 비선대로 내려가는 길을 건너편에 남겨 두고 상봉으로 향했다. 마등령
상봉에는 보슬비와 함께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잠시 앉아 쉬었다.
나 혼자 뿐이었다.나 혼자서 준비해 간 행동식도 먹고 막걸리도 마셨다.
깊은 산 중에 홀로 남겨진 듯 아득하였다.바람이 불어와 쌓인 피로를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뛰어 놀던 동네 뒷산처럼 상봉은 설악산치고는 완만하고
부드러웠다.다시 발길을 재촉하며 비선대로 향했다. 순간 나타난 기암괴석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
비선대를 형성하고 있는 큰 바위 산에서 또 발길은 멈춰지고 있었다. ▼
역시 같은 장소에서 설악의 준봉들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아직도 가랑비는 내리고 있었다.▼
웅장한 설악의 준봉들 밑으로 천불동 계곡이 보인다. ▼
금강굴, 금강굴은 자연 동굴로 1300 여년 전에 신라시대 원효대사께서 수행기도하셨던 곳으로
원효대사의 대표적인 금강 삼매경의 머리를 따라 금강굴이라 하였다. 이곳 금강굴에서만 외설
악의 가장 아름다운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을 오기까지에는 수 없이 가파른 철계단을 다
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가슴을 조여야 한다.▼
금강굴 가기 전 100미터 전방에 있는 전망대.▼
비선대, 기암절벽 사이에 한 장의 넓은 바위가 못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계곡쪽에서는
미륵봉(장군봉),형제봉, 선녀봉이 보이며 미륵봉 등 허리에 금강굴이 보인다. 와선대에
누워 주변 경관을 감상하던 마고선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비선대라 부른다.
이곳에서 남쪽으로는 천불동 계곡을 지나 대청봉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금강굴을 지나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등반로가 있다.▼
비선대 바위. 언제 누가 휘갈겼는지.. 한자로 "비선대"라고 쓴 글씨가 뚜렷하다.
발군의 달필가의 작품인 듯싶다. ▼
소공원으로 이어지는 비선대 계곡, 아직 강수량이 충분하지 않은 듯 물이 그리 많지
않아보인다. ▼
신흥사 불상. 우리나라 최대의 불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설악산 입구에 있는 신흥사 일주문이다.▼
나무가지에 앉아 있는 곰의 형상이다. 너무 귀엽다.▼
터벅터벅 소공원으로 걸어오는 폼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기진맥진, 이럴때
그 표현이 딱이다. ▼
산행 일시 : 2009. 5. 16~17(토요 무박)
산행 코스 : 오색약수~대청봉~중청~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소공원
산행 시간 : 약 10 시간
안내 산악회 : 안양 산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