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산
매표소를 통과하여
운악산 입구에 들어선다.
오늘은 제18대 총선일이다.
미리 부재자 투표를 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한가롭게 운악산을
노크하게 되었다.
마침 투표확인서를 제출하니
입장료(1700원)가 면제되는
행운을 얻었다.
운악산 입구 표지석과
한북 제일의 극락도장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일주문의 모습을
담아 보았다.
운악산 만경대는 금강산을 노래하고
현등사 범종소리 솔바람에 날리는데
백년소 무운폭포에 푸른 안개 오르네...
해발 937.5미터의
운악산 정상인 동봉,
정상 표지석이 산뜻하다.
몇년만에 찾은 운악산,
경기 5악의 하나이면서도
그중 가장 수려한 멋을 지녔다.
운악,
그 이름 탓이었을까?
오늘도 구름은 흐르는 땀만큼이나
쉴새없이흘러가고 있었다.
호방한 조망, 회화적인 풍광,
아름다운 암릉경관....
이것이 운악산의 참 모습이다.
산행 일시 : 2008. 4. 9(수)
산행 코스 : 하판리=>현등사(뒷편)=>절고개=>병풍.눈썹바위
=>동봉.서봉=>현등사
산행 시간 : 약 4시간
안내 산악회 : 안양 산죽회
운악산의 정상인 서봉이다.
해발935.5미터인 서봉은 엄밀히 말하면
937.5미터인 동봉보다 2미터가 낮으므로
운악의 정상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서봉은 포천시에서
정상 표지석을....
그리고 동봉은 가평군에서
각각 정상 표지석을 새워놓았다.
민영환 암각서..
구한말 궁내부대신이었던 민영환 선생이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바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걱정하던 곳으로 1906년 나 세환 외 12인의
의지로 이 바위에 "민영환"이라 새겨놓은
암각서가 남아있어 민영환 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閔泳煥선생의 비 앞에 발길이 멈춰진다.
기울어져 가는 한 나라의 국운을 애통해 하며
늘 이곳에서 머물곤 했다는 그를 잠시 만나보기로 한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나라의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책임지는 관리의 자세를 다하고자 예리한 비수로
자결을 결행하였던 민영환.. 그의 옷소매에서 나왔다는
가슴 찡한 유서를 보면서 새삼 오늘의 관리들을
생각해 본다.
"아,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민족은 장차 생존경쟁에서 모두 멸망하리라,,,
무릇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사람은 도리어 삶을 얻나니,
나 민영환은 죽음으로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고
2천만 동포에게 사죄하려 하노라......."
운악산 산행기 중에서.....
현충사 입구에 있는 삼충단,
조병세, 최익현, 민영환 선생 등
세분 충신의 충절을 기리는
제단이다.
이 삼충단은 일제치하이던
1910년에 설단하였으며
1989년에 복원하고 매년 11월 25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조선 태종11년(1411년)에
현등사를 중창했던 함허대사의
사리탑으로,
조선 초기 부도양식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많은 등반객들이
운악산의 남근석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특히나 여성들은 필수적으로
둘러보고 지나간다.
멀리서나마 그 유명한 남근석과
주변에 있는 멋진 소나무를 담아 보았다.
병풍처럼 곱게 늘어선
병풍바위 앞에서......
그리고, 눈썹바위를
뒤로하고 한컷 땡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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