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2009. 1. 29. 16:25

 

 

일본 연수를 다녀와서...

 

  난 생 처음 맞이하는 “해외 나들이”라는 설렘 속에 일본 연수에 나서는

우리 일행의 마음은 나들이의 즐거움이라기보다는 무거운 짐을 지니고

떠나는 심정 바로 그것이었다.

 

  때가 때인지라 민감한 일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

었고 남달리 특별한 공적도 없이 특혜처럼 주어진 기회가 동참하지 못한

많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으로까지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허송하지 않고 보다 뜻있고 유익하게 활용

하는 것만이 그나마 동행할 수 없었던 동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

가 생각되어진다. 우리 일행을 태운 비행기는 김포공항을 이륙한지 약 2시간

후에 나리따 공황의 활주로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처음 밟아보는 일본 땅, 무엇을 체험하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멀리할 수도

가까이 할 수도 없는 일본 땅에서 말이다. 간단한 입국기념촬영을 마치고 우

리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일본 천황이 기거했다는 황거와 니주바시

공원 등을 둘러보고 숙소에 도착, 이국에서의 첫 여장을 풀었다.

 

  일본, 그리고 일본인!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종 중에서 우리와 가장

흡사하게 닮았다는 일본인, 그렇다면 이 외형 말고는 같은 점과 다른 점이

또 없을까? 이같은 의문은 문득 책으로 접한 바 있는 이어령 교수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떠올리면서 곧 풀리게 된다.

 

  우리나라 티코 크기의 조그만 승용차, 길거리의 아담한 간판, 2~3평 크기의

파출소 건물,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아파트, 그리고 지금 마주하고 있는 우리

의 여관 규모보다 작은 호텔방, 욕실, 면도기, 칫솔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

같이 우리의 그것들보다는 작아보였다.

 

  크고 넓은 것을 선호하는 “확대지향의 우리 민족”과 확연히 비교가 되었다.

동경의 거리는 눈에 띄게 한산하였다. 통행인구도 적었지만 차의 흐름도 비교

적 순조로웠다. 거리거리를 수놓은 간판과 네온사인은 작으면서도 현란한 느

낌을 주지 않았다.

 

  가장 번화하다는 긴지(銀座)거리 역시 우리의 명동거리와 비교하면 확실히

차분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면적과 인구 등 규모면에서 볼 때 동경은

서울보다 훨씬 크다. 물론 차량 보유대수도 서울의 몇 배라고 한다.

 

  교통체증으로 인한 유류낭비가 년 간 수천억 원대에 이르고 “교통사고 세계

제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우리와 무엇이 다르기에 이처

럼 답답한 가슴을 확 트여주게 하는가?

 

  거미줄처럼 이곳저곳으로 얽혀 있는 전철 망을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민들이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전거와 전철을 연계하여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승용차는 주말용이라고 한다.

 

  오늘 낮 시간 입경 시에 고속도로를 탔을 때도 차의 흐름은 순조로웠다. 줄곧

시속 70km 내외를 유지하고 추월을 금기시하는 교통문화, 그것은 확실히 우리

의 본보기였다. 오늘 또 한 가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바로 노인 복지문제이다. 중식 때의 식당 종사원은 모두가 할머니 일색이었고

고속도로 톨게이트 종사원 역시 할아버지 일색이었다. 종사원 중에는 고위 관료

출신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갈수록 핵가족화 되어가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노인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노인정 건립, 복지관 확충도 물론 중요하지만 진정으

로 노인들이 소외감을 갖지 않고 여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적합한 일터를

마련해주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날 우리는 우리의 구청과 비교되는 예정에 없던 신주꾸(新宿) 종합청사를

방문하였다. 주로 민원관계부서라는 1,2층을 둘러보았다. 우리 청사에 비하여 인

상적인 것은 각 실과가 우리와는 달리 별도의 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층 전체가

완전 개방된 상태로 부서표시만 부착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직원들의 시민봉사정신도 높이 살만하였다. 아

직도 권위주의의 악습을 청산하지 못하고 별실을 선호하는 간부직 공무원들, 티

타임이다 뭐다 해서 할 일을 뒤로 미루고 잡담이나 일삼는 공직자들이 엄존하고

있는 우리의 관료사회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서울시 최초로 시민봉사실에 아가 방을 설치하여 좋은 반응을 받은 바 있는 동

작구청, 그러나 이곳 일본의 구청은 아가 방은 물론이고 보채는 아이를 댈래주는

수유실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셋째 날에는 드디어 말로만 들었던 고속전철 신간선을 이용, 교또로 향하였다.

마침 우리나라도 경부선 고속전철 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니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평균 시속 220km를 유지한다는 신간센은 빠르기 말고도 걱종 편익시설

이 완비되어 있었다.

 

  공중전화, 도시별 약도, 남녀분리화장실, 음료수대 등이 항상 청결한 상태로 유

지되고 있으며 칸별 입구 상단에는 모든 승객들이 보기 용이하게 국내외 주요 뉴

스가 컴퓨터의 자막을 통하여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으며 km 단위의 다음 역

거리표시가 15km전부터 예고하여 주었다.

 

  신간센 창밖에 펼쳐지는 일본의 산하는 우리나라처럼 아름답지는 못했지만 논과

밭이 있다는 사실 말고는 도시와 농촌에 대한 구별의 기준이 모호할 정도였다. 일

본의 종교는 불교가 대부분이라는 가이드의 지적처럼 우리 같으면 도회지에서 흔

히 볼 수 있는 교회나 성당 건물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이 나라의 관광명소도 절을 빼놓고는 별 얘깃거리가 없었다. 우리 일행도

예외 없이 아사쿠사 관음사, 청수사, 금각사, 동대사 등 상당 부분의 일정을 사찰

관광에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고찰하여 봐도 나라 지방의 동대사를 위시한 불교문화는 대부

분 우리의 양식을 전수받은 것들이어서 주변경관 빼고는 특별히 관심을 끌지 못했

다. 마지막 일정으로 우리나라의 부산시와 비교된다는 오오사카에 머물렀다.

 

  이곳은 미국 LA의 코리아 타운을 연상케 할 정도로 교포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

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우리와 악연을 갖고 있는 풍신수길의 유품전시

장인 오사까성에 들렸다.

 

  새롭게 재건되었다는 천수각 건물과 그 내부에 전시되어있는 수길의 유품 하나

하나를 둘러보면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속에선 어느 민족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전율과 분노가 솟구치고 있었으니 이것을 두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들 하는 모양

이다.

 

  경제적 대국 일본,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일본인! 흔히들 일본을 일컬어 국가

는 잘 살아도 국민은 풍요롭지 못하다고들 한다. 필시 그렇다. 비록 짧은 일정 속에

서 둘러 본 일본이라고는 하지만 적절한 표현임에 동감한다.

 

  고물가에 시달려 마음 놓고 소주 한 잔 먹지 못한다는 그들 일본인, 고도의 합리

주의적 사고 때문에 이웃 간의 교감이 단절되곤 하는 일본인, 그러나 그들은 국가

의 구성요소의 하나로써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애국심과 그들만이 갖고

있는 자존감은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한다.

 

  일본의 주요도시를 고루 둘러보았지만 도로 굴착현장이 목격되지 않은 점. 외형

만 보고는 건축공사장인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완벽하게 갖춘 공사장의 미관 및

안전시설 등은 우리공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텔에 의례히 있어야 할 나이트클럽이나 사우나, 빠진고 시설이 없는 것은 일본

사회의 전문화 현상을 말해준다. 먹다 남은 음식쓰레기가 수 조원에 달한다는 우리

와 완전 정착된 주문식단제로 음식물 찌꺼기가 생겨날 여지가 없는 일본과는 무엇

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여느 주유소에서 펄럭이는 만국기 속에서도 우리의 태극

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룸 사롱, 고스톱, 노래방, 온갖 못된 문화는 모두 우리에게

보내고 철저히 우리를 경계하고 우리의 잠재력에 겁을 먹는다.

 

  그리고 우리의 성장저지에 총력을 기울인다. 이것이 일본이고 일본인이다. 짧은

기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 본 일본이라는 나라, 적잖게 배울 점도 있었다. 좋은

점은 과감히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동행하지 못한 동료직원들에게 송구스러

운 마음을 전한다.

 

                            199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