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희미한 첫사랑의 그림자를 찾아서...
경춘가도 옆, 남양주의 어느 조그만 산자락에 자리잡은 아담한 사랑의 쉼터,
얼마 만에 느껴보는 호젓함인가?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문득 눈을 뜬다.
모두들 잠에 취해있는 순간에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집사람을 불러 간단히
아침을 하고 간식거리를 챙겨 나 홀로 천마산으로 향한다.
천마산, 하늘과 맞닿으리만큼 높다하여 천마산(天摩山)이라고 하였던가?
근교 산치고는 비교적 높은 산에 속하는 천마산, 다소 험하고 조잡하다하여 예
로부터 소박맞은 산이라고 불려져 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동안 서울근교의 관광대상지로써 도시민의 사랑을 받아 온 산임에도
틀림없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곳에 스키장이 들어서면서부터 등산객이 급
감하였다고 한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일 때가 아름다운 법이다. 사람들의 편리와 욕망 때문에
허리가 동강나고 피를 흘려야 하는 산, 골프장과 마찬가지로 스키장 건설 또한
소위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저질러지는 사람의 욕망이 얼마나 비이성적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의 하나이다.
그래도 계절의 흐름에 따라 신록은 피어난다. 우거진 참나무 숲이 곳곳에 그늘을
만들고 있다. 산이 깊으면 물맛도 깊다고 한다. 깊은 산골 속 호젓한 야영장의
약수터, 조롱박으로 만든 물그릇에는 푸른 산이 떠있고 시원한 물맛은 여지없이 여
름날의 더위를 삼켜버린다.
깔닥고개를 넘어 능선 길에 접어든다. 뙤악볕 내리쬐는 장쾌한 능선 길을 따라
걷는다. 깊은 사색에 잠겨 나 홀로 걷는다. 발을 옮길 때마다 뚝 뚝, 떨어지는
땀의 의미는 여름산행의 묘미, 바로 그것이리라.
비석바위를 지나 뽀족봉, 그리고 주봉에 이르는 능선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암봉
들이 줄을 이으며 오늘 나 홀로 산행의 보람을 만끽하게 해 주고 있다.간혹 불어
주는 한줄기 바람이 시원함을 미쳐 느껴지게 하기도 전에 목마름에 신음하는 대
지로부터 흙먼지만 일으키게 한다.
오랜만의 나 홀로 산행,,, 앞서는 사람, 뒤서는 사람 눈치 안 보아 좋고 사람과
의 대화 대신 자연과의 풍족한 대화를 나누어서 좋다. 내가 그동안 매주 비가
오나 눈이오나 산행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산행을 하지 않고 있는 동안에 계
속되는 산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서이다.
그러나 산행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산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당연히 없어지기
마련이다. 천마산, 20년 전 바로 이맘때, 산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던 그
시절. 나는 첫사랑인 그녀와 함께 청바지를 입고 이 산을 찾았었다. 초록색 잎사귀
우거진 떡갈나무 숲, 굽이굽이 굽이쳐 겹쳐진 깊은 협곡을 우린 마구 떠돌았었다.
그리고 지금 내 행복을 지켜보게 될 이 숲과 협곡의 메아리 속을 지금 나 혼자 외로
이 그 순간을 떠올리며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0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