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야산..
참으로 빨리도 달리는 세월이라는 속도를 체감하면서 문득 하반기를 맞는다. 모처럼 한여름의
땡볕을 피해 떠나는 납량산행, 오늘은 시원한 계곡과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반겨주는 녹색의
숲이 어우러진 대야산을 찾는 날이다.
이른8시,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정확히 세시간만인 11시에 대야산 입구에 이른다. 부산 팀이
아직 30여분 후에나 도착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 정상에서나 조우할 심산으로 자사모의 산
식구들은 먼저 산에 오르기로 한다.
대야산!! 오래도록 대하산이라 부르다가 뒤늦게 옛 기록을 고증한 결과 제 이름을 찾았다는
산으로 백두대간 상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소백산맥의 고지에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채
깊숙이 숨어있는 대야산.. 그러나 우린 본격적인 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앞서 산자락에
길다랗게 펼쳐지는 시원한 용추 계곡부터 맛보게 된다.
햇볕은 없으나 습도가 높은 날씨 덕에 땀이 비 오듯 한다. 듣던 대로 용추 계곡은 맑은 물줄
기가 그윽하고 깊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소리,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나무들로 하늘이 가리어진 오솔길, 그 옆으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작은 폭포들이 이어지는데
길은 멀리 아득하여 세속의 무리들이 머물기에 고요할 뿐이다.
조금 걷다보니 거대한 화강암반을 뚫고 쏟아지는 폭포 아래에 하트형으로 패인 절묘한 형태
의 소(沼)가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문경팔경의 하나인 용추 폭포라 한다. 암수
한 쌍의 용이 승천을 위해 용트림을 하다 남긴 용 비늘의 흔적이 신비롭다. 아울러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도선 선사가 태조 왕건에게 道詵秘記를 전수했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길다란 계곡의 퍼레이드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깔딱 고개로 이름지어진
밀재에는 산죽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이름 모를 잡목들이 무성하다. 촛대바위, 3층집 크기의
큰바위가 작은 바위 위에 얹혀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며 정상에 오른다.
짙은 안개에 가려져 먼 산은 바라볼 수 없었지만 그런 대로 사방으로 둘러 쌓인 명산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피아골로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고 굴곡이 심하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조심조심 하산을 서두른다. 다시 용추계곡 길로 접어들었다.
화강암을 장판처럼 깔아 놓은 듯한 폭포, 맑은 물이 엿가락처럼 꼬아 도는 대자연의 행위
예술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밑바닥에 내려앉은 세속의 흉허물들이 다 씻기는 듯
했다.
이제 뒤풀이 순서다. 반가운 여러분들과 산행 중 미쳐 나누지 못한 얘기들을 마음껏 나누며
헤어지기 싫은 마음을 추슬러서 부산팀 여러분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상경 길에 오른다.
유감스럽게도 집에 들어온 시간은 예정보다 훨씬 늦은 자정 무렵이었다.
200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