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2009. 1. 28. 18:37

 

 

 

 지난 일요일에 우천 불구하고 강행키로 했던 유명산, 그러나 일요일 새벽에 중부지방을 강타했던

집중호우로 산행계획을 전격 취소하고 말았다. 돌이켜보니 참으로 잘한 결정이었다. 졸지에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잃고 시름하는 이재민들을 생각해서라도 한가로이 산을 찾아 나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제헌절 아침에는 더 이상 호우예보도 없고 수해수습도 신속히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 산 가족들은 이미 불에 달구어 달아있는 쇠뿔을 급기야 빼기로 한다.휴일아침 이어서인

지 제법 교통의 흐름이 순조롭다. 사당사거리에서 만난 우리 일행은 올림픽 대로를 지나 팔당대교입

구에 이르러 우리를 기다리는 또 다른 일행과 합류하게 된다.

 청평 땜을 바라보면서 북한강을 건너 청평 호수변으로 난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한참 달리다 보니 어느

듯 유명산입구 주차장에 이른다. 대전에서 오신 3지역 회장님 등 모두 열두 분이 산에 오른다.
유명산, 저토록 아름다운 비경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긴긴 세월을
이름도 없이 묻혀만 있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엠포르 산악회의 국토 자오선 종주 등산 중 발견되어 당시 홍일점으로 산행에 참여했던

"진 유명"이란 여성의 이름을 따서 붙여지면서 드디어 고유의 이름을 갖게 된다. 많은 무리의 사람

들이 웅성거리는 산책길을 지나니 곧바로 급경사로 된 등반로가 나타난다.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음사이를 뚫고 한낮에 내리쬐는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땀을 펄펄 흘리며 산에 오른다.

 계속되는 급경사 길을 한시간여 오르니 드디어 정상에
이른다. 유명산 정상!!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푸르고 싱그럽게 자라나는 억새풀,, 손에 잡힐 듯 용문산이 가깝게 보이고 조금 멀리 명지산,

화학산, 운악산 등 주변에 널려있는 명산들이 병풍을 두르듯 펼쳐지고 이 수려한 경관은 시종일관

우리일행의 마음을 압도해 버리고 만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한적한 나무그늘 밑에 둘러앉아
준비해간 성찬으로 맛있게 식사들을 즐긴다.

이제 하산할 시간이다. 급한 경사로를 한참 내려 오니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계곡

길에 접어드는 것이다.

 유명계곡은 그 길이가 5㎞에 이르는 참으로 긴 계곡이었다. 뿐만 아니라 뾰쪽하고 울퉁불퉁한 바위

가 산재되어있어 위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바위 위를 흐르는 물에 얼굴을 씻고 물을 마셔본다.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전설을 지닌 용소에서는 깊은 물 속으로 뛰어드는 객기도 부려본다.

 짙어 가는 녹음사이를 뚫고, 물살 빠르게 흘러가는
계곡 물에 빠져가며 즐거우면서도 힘들게 하산

에 이르지만 어차피 이 순간도 영원한 과거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말 것이다. 문득 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고 자답해 본다.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 고생고생하며 왜 산을 오를까?"

 대답은 이렇다. "내가 산을 찾는 것은 단순히 산이 좋아서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참으로 부끄

러울 때가 많다. 나는 이 세상에서 때로는 오만과 독선으로 자신을 지탱해 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적

어도 산과 마주하는 시간만큼은 겸손해지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2001.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