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고시(2)
후드득 후드득....
후덥지근한 여름날에 한줄기 소낙비 떨어지는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시원스럽다.
따따 따다닥 따닥 따따....
그러나 이 소리는 양철지붕 위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소낙비 소리와는 분명 거리가 있는
소리이다.
바로 그 소리는
지난 5월 13일 서울상공회의소 워드실기시험장에서
시험개시 신호와 함께 일제히 터져 나온 자판
두들기는 소리였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초중고 생들로 겁 없는
10대라서 어찌나 자판을 마구 두들겨대는지 나잇살이나
먹은 나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긴장하고 있던 터에
설상가상으로 그 소리에
또 놀라 이미 주눅이 들대로 들어버렸다.
당연히 눈 따로, 손 따로,
마음 따로 상태가 돼버린지라 평소 입력연습에서는
입력을 마치고 5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었으나
이날은 되려 시간이 부족하여 아쉽게도 그래픽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시험시간이 종료되고 말았다.
참으로 딱한 순간이었다.
이제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정시간으로 주어진 10분에 모든 걸 걸어야했다.
다행히 수정시간은 요란한 자판음도 들리지 않았고
팽팽했던 긴장감도 많이 수그러들었던지라
어느 정도는 평소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때문에 여유 있게 치환, 한자입력, 전각기호, 머리말,
각주, 쪽 번호 등 모든 수정사항을 순서대로 빠짐없이
차분하게 수정해 나갈 수 있었으며 1차 입력시험에서
미처 그리지 못한 그래픽까지 거뜬히 완성하여
수정까지 끝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어렵사리 시험은 모두 끝났다.
모든 시험은 시험을 마치고 난 후의 표정관리가
중요하다고 한다.
아무리 자신감이 충만하게 시험을 치렀다고 해도
최종합격자발표가 있기까지는 절대 엄살을 피워야
한다고 들었다.
합격자발표 예정일의 하루전인 지난 5월30일,
상공회의소 홈페이지를 열어보았다. 다행인지,
당연한 일인지 워드프로세서 1급 합격자명단에
내 이름자가 또렷이 보였다. 오늘도 수능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내 아이에게
"노력하면 반드시 이뤄진다" 는 교훈을 심어주기 위해
즉석에서 인쇄해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희끗희끗...
이제 내 자신도 싫어져버린 반 백년, 이것을 과연
50줄의 기상이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만용이라고
해야할지...
이렇게 어줍잖게 시험후기를 써본다는 것이
참으로 우습기만 하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조그만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