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8강전이 있었던 날...
그것이 산행이 아니고서야 1박2일의 나 홀로
나들이는 분명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금요일 저녁,
마눌이 내게 묻는다.
'당신, 내일 어디 가신다고 하셨지요?'
'어, 부산 상가 집에 문상가지.....'
'그땐 팔순잔치라고 안 했었나?
(지난 주 화요일 빙부님 기일에 마눌이 이번 일요일만큼은
집에 있어달라고 통사정을 해왔으나 나는 부산 카사모
행사에 불참할 수 없어서 미리 쐬기를 박고자 하얀 고진말을
하고 말았는데 그때 상가 집에 간다고 하면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엉겁결에 팔순잔치에 참여한다고 하였었다.)
'아니야, 당신이 잘못 들었겠지......
상가 집이라고 했었는데...
(팔순잔치라고 고집하면 축의금만 전달하고 집에 있어달라
할까봐서..)
'아무래도 당신 조금 이상하다.
그땐 분명 팔순잔치라고 한 것 같았는데
갑자기 상가 집으로 둔갑을 하고...그리고 또 어떻게 화요일 날,
주말에 돌아가실 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어? '
(순간 당황해진 나, 잽싸게 머리를 굴린다.)
'어, 사실은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식물인간 상태 이셨나봐,
그래서 주말 경에 산소호흡기를 떼시려고 그러셨는데 마침
오늘 떼셨고 동시에 운명하셨다는 군 .......'
(암튼 나의 하얀 고진말 솜씨는 내가봐도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그랬군요, 그러시면 토욜에 문상하시고 일욜엔 일찍
와주셨으면 좋겠네요'
(기발한 나의 하얀 고진말에 속아 넘어 갔는지,
아님 속은 척 해주는 건지 아무튼 이 날 따라 마눌이 그렇게
존경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랬었다.
이번 부산모임은 하얀 고진말을 써가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결과, 어렵사리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이날은 스페인과의 8강전이 있는
날이라서 공항에서 중계방송을 시청할 심산으로 예정보다
두시간 빠른 시간에 항공기 예약을 했었다.
태극전사들의 피로가 누적된 탓일까?
예상보다 몸놀림이 답답하게 느껴진 이날의 경기는
후반5분을 남겨놓고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탑승을 독촉하는 안내방송에 따라 경기결과도 지켜보지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탑승하였다.
TV는 물론이고 라디오, 심지어 핸폰까지도 전원을 꺼야하는
기내에서의 몇 분의 시간은 실로 지루하고도 답답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기내방송을 통하여 '연장전돌입, 연장전
무승부로 승부차기돌입' 등등 간간이 들려주는
소식에 그나마 궁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살며시 단잠이 들었다.
갑자기 기내에서 '우와~~' 하고 울려 퍼지는 함성에
눈을 떠보니 마지막 승부차기에서 드디어 우리가
승리하였다는 것이다. 세계 축구사가 새롭게 써지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고
항구도시 부산에 도착했었다.
부산에 계신 고마운 분들께서 미리 예약해 두신 광한리
해변근처의 한적한 일식집에서 반가운 분들과 조우하여
싱싱한 회와 술을 곁들이며 마음껏 회포를 풀었었다.
그리고 저녁시간에는 그리움에 물든 파란빛 바다위로
철썩철썩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느껴가며 해변을 거닐면서
마냥 행복한 시간을 가졌었다.
그리고 정모날인 이튿날 정오,
전국적으로 많은 분들께서 와주셨다. 모두 28명이 오셨으니
지방모임치고는 실로 대성황이었다.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반가운 마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겹고도 진지한
대화의 꽃을 피우며 마냥 행복에 겨운 모습들이었다.
반가웠던 그 이름 하나하나를 일일이 불러보고 싶지만
지면관계상 마음속에만 간직코자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우적대던 어느 굽이에서 잔잔한 즐거움과 넉넉한 만남을
주선해준 부산이 내게 준 선물치고는 너무나 의미 있고
큰 선물이었다.
귀경길 기내에서 나는 몇 번이고 뇌까렸었다.
'우리들의 가슴속에 이렇게 라도 조그만 미소하나 간직할
수 있는 그런 만남 들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고 이런 아름다운
만남 들이 많을 때 비로소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라고.......
이번 부산모임에 참여해 주신 여러님들께 고마움을,
그리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석치 못한 분들께도 다음
모임엔 꼭 참석해 주십사하는 마음을,또 이번 행사준비에
애써주신 부산의 여러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해드리며 아울러 언제나 열혈남아,
아무나 고문님의 따뜻한 보살핌에도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