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여일간의 결별...
도대체 사람은 무엇을 얻기 위해
그리도 힘든 생을 이어가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살다보면,
때로는 서글프도록 허무한 세상의 공간 속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소외와 허탈 속에 병들어 가는
콘크리트 문화의 절망에 일정부분 보람을
채워 넣기까지에는
길고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그랬었다.
한가위가 끝나자마자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잠수에 들어갔었다.
잠시나마 세상의 모든 고뇌를 떨쳐 버리고자
로빈슨크루소의 무인도를 찾아
황홀한 외출(?)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고독의 참 모습은 누구나 가진 인간적인 허상의
그림자이면서 우리를 한 단계 성숙시켜 주는
요소라고 하였던가?
그러나 잠수상태에서의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육체 공간에 속박된 격리생활은
무척이나 지루하고 답답했다.
무엇보다 나를 두렵게 하는
정체불명의 환경들은 내 정신을
더욱 더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했는지 모른다.
눈만 감으면 불과 17인치 크기의
금속 쇠붙이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동안 나와 인연을 맺은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가슴과
참된 모습들이 느끼고 싶어진다.
이렇게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으로 훌륭한 철학자였었나 보다.
"인간은 비록 하나의 개인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어도
그 개인은 오로지 하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 가면서 존재한다"
이것이 소위 그가 설파했던 인간의 정치적 동물,
내지는 사회적 동물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이제 그 길고도 짧았던 잠수행각은 끝이 났다.
땅속 깊이 뿌리내리고 믿음직스럽게 서 있는
한 그루의 고독한 나무,
그 나무에 비가 내리고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순결의 하얀 눈이 덮어져도 그 나무 주위에는
여러 형태의 나무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 나무는 힘찬 생명의 기운을 얻어
다른 나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꾸준히 성장해 나갈 것이다.